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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Mar 27. 2019

우간다 헬스장에 언더아머 단속반이 나올 수 없는 이유

이곳에선 3대 500kg 이상을 본 적도 없다

타인의 시선과 눈치를 극도로 많이 보는 우리의 문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헬스장이다. 헬스장의 공기는 그야말로 치열한 눈치싸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랙이나 스미스 머신에서 스쿼트를 해야 할 때, 저 사람보다 5kg짜리 원판 하나라도 더 끼울 수 있다면 안도하지만, 저 사람이 쓴 바벨을 들 수 없어 원판을 빼야 한다면 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턱걸이 개수 하나에 혼자 우울해하거나 뿌듯해지기도 한다. 다른 운동과 달리 웨이트 리프팅은 수치화되는 운동이다 보니,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기 더욱 쉽다. 수치 비교가 가능한 이 분야, 게다가 눈치까지 보는 문화권에 '언더아머'라는 브랜드가 소개됐다. 


그렇게 '3대 500 이하 언더아머 착용 금지'라는 웃음 코드가 유행했다(웨이트 리프팅의 3대 운동인 벤치 프레스, 스쿼트, 데드리프트를 최대로 한 번 들 수 있는 무게의 총합이 500kg 이하라면 언더아머를 입지 말라는 헬겔러들의 유머). 사실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유머 코드가 웃길 수도 있다. 실제로 SNS에는 '언더아머 단속반'이라는 페이지가 등장해 3대 500kg이 되지 않는 이들이 언더아머를 입고 있는 경우 출동해 옷을 찢거나 입지 못하게 하는 등의 유머 사진들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드웨인 존슨은 언더아머 대표 모델 중 한 명. 이런 류의 유머가 한 때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왔다

언더아머라는 브랜드는 사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브랜드 파워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전 세계 스포츠 브랜드 순위에 균열을 낼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미 프로농구 NBA 선수 '스테픈 커리'다. 2014년부터 두 시즌 동안 백투백 MVP를 수상하고, 한 시즌 402개 3점슛 성공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써 내려가며 리빙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NBA에 데뷔한 루키 시즌부터 2012년까지만 해도 커리는 나이키와 계약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키와의 계약을 깨고 언더아머와 새로운 출발을 하는데, 이전까지 고질적이었던 발목 부상이 우연인지 운명인지 언더아머 농구화를 신으면서 확연히 줄었다. 때문에 그가 착용하고 있던 언더아머 농구화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다. 또 비슷한 시기에 PGA에선 조던 스피스가 언더아머를 입고 두 번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언더아머는 겹경사를 맞이했다. 그렇게 언더아머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양강 체제였던 스포츠 브랜드 순위에 균열을 냈다. 

Stephen Curry의 SC와 그의 등번호 30을 절묘하게 조합해 만든 그의 시그니처. 

이러한 언더아머 열풍은 우리나라 헬스장에 고스란히 전파됐다. 초창기 국내에 언더아머 유통이 뚫리지 않았을 땐, 미제 직수입이 가져다주는 사대주의 냄새에 취해 마니아 층에서 언더아머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나 역시 그 뽕에 완전히 취해 있었다). 이제 언더아머가 보편적으로 확산되다 보니 헬스장의 언더아머 얼리어댑터들이 자신을 차별화시켜야 했다. 그렇게 3대 500 이상이라는 기준이 헬겔러들 사이에 처음 만들어졌다. 


웃긴 점은 언더아머 간판 모델인 스테픈 커리의 3대 총합이 500kg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알려진 바로는 커리가 들 수 있는 데드리프트 1RM(최대로 한 번 들 수 있는 무게)이 180kg가량인데, 일반적으로 데드리프트로 들 수 있는 무게가 가장 무겁기 때문에 커리의 3대 총합이 500kg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리라면 언더아머 단속반은 커리 유니폼을 찢으러 지금 당장 샌프란시스코로 떠나야 한다. 

191cm의 아담한(?) 신장과 그저 그런 운동능력에도 NBA 스타로 역사를 쓰고 있는 커리에게 단속반이 등장하긴 다소 민망하다.

이미 언더아머 단속반은 대중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고, 헬겔러들 사이에선 한물 간 유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한 번 휘몰아쳤던 이러한 유머 코드가 우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는 점이다. '내가 3대 500kg이 안되는데 오늘 언더아머 입고 헬스장 가도 되나'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이미 이 유머 코드는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언더아머코리아가 '언더아머 단속반'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영업방해로 고소하겠다는 이야기가 돌자, 페이지 이름도 바뀌고 수그러들었지만 말이다.

자매품 3대 자산 500억 이하 언더아머 착용 금지

나도 3대 500은 안되지만 언더아머를 좋아하는지라, 눈치 봐 가며 언더아머를 즐겨 입었다. 그러다가 가게 된 우간다 헬스장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헬스장에 있는 사람 두 명 중 한 명은 언더아머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3대 500을 평균적으로 들 수 있는 흑인 유전자의 탁월함 때문인가?


한 번은 랙에서 스쿼트를 방금 끝낸 나에게 한 친구가 다가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잠시 앉아 있는 나에게 그 친구가 말을 걸었다. "나 이거 한 번 들어봐도 돼?" 

진자 지역에서 가장 좋은 헬스장인 Health First Gym(2019.03.25)

우리나라 헬스장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보통이라면, "저랑 랙 같이 써도 될까요" 정도가 예상 가능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내가 들던 무게를 그대로 호기심에 들어보겠다는 이 질문은 자기 자신이 이 무게를 도전하고 싶은 목표 하나만 가지고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바벨을 어깨에 걸쳐보더니 고개를 젓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놨다. 그러고는 웃으며 자긴 못하겠단다. 나도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 친구를 향한 조소가 아니었다. '3대 500 이하 언더아머 금지'라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신경 써왔던 과거, 남 눈치 보면서 자기를 검열하고, 전전긍긍해왔던 시간으로 인생을 채워 온 과거에 대한 실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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