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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Apr 04. 2017

어린 네가 겪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야.

고난 점진론에 대한 비판

사회에 나가면 수능보다 더 힘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수능만을 바라보며 숨 가쁘게 달릴 때 내 기운을 증발시켜버리는 기분 나쁜 말이었다. 주로 수험생이 징징거릴 때 어른들이 그 투정을 멈추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는 이 말은 두 가지 절망감을 안겼다.


1. 수능 쳐봤자 어려움은 계속된다.

2. 내가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나?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인생이 내게 점진적인 어려움을 준다니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느꼈다.




  다양한 캠퍼스 라이프를 경험하면서 고등학생 때보단 조금 더 많은 경험이 쌓이다 보니 수능보다 어려운 일이 정말 많았다. 어떤 단체에서 회비를 걷는 것도, 의견을 모으는 것도,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조별과제를 하는 것도,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내가 맡은 책임과 어려움이 양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수능은 정말 인생에서 출발도 안 되는 정말 별 일도 아닌 것이었구나." 

"난 그저 어린 마음에 위로받고 싶어 호들갑 떨었을 뿐이었구나." 

내 수험 생활은 그렇게 점점 작고 사소한 것으로 변했다.




  군 전역과 동시에 운 좋게 한 언론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회사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내 콘텐츠에 대한 책임감은, 대학생활에서 느꼈던 책임감과 비교하면 전자가 심하게 섭섭해할 수준이었다. 사실 확인, 오탈자 확인, 메시지 확인 등등… 퇴근 후 지하철에서 내 모습이 비친 창을 보면 얼굴이 항상 벌게져 있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인턴 생활을 끝내고 다시 대학으로 복귀했다. 거친 사회생활을 맛보고 대학교로 다시 돌아가니 두려울 게 없었다.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었다. '수험생활 - 대학생활 - 사회생활 - 결혼생활'의 순서로 어려움이 증대되는 것처럼 어른들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대학 복귀는 전혀 쉽지 않았다. 갑자기 내가 몸 담고 있던 단체를 덜컥 떠맡자니 스트레스를 받았고, 게을렀던 지난날 덕에 쌓여있던 내 학점이 목을 조여왔다. 학교는 하필 그 새 너무 많이 바뀌었고 물어볼 후배는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공황상태였다. 


  성폭력 가해자를 취재하기 위해 전화하던 것도, 내가 쓴 기사의 클레임 전화를 받을 때 그 두근거림도, 취재원에게 욕설을 들었던 것도 막상 지나 보니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지금 바로 내 앞에 놓인,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힘듦에 순서와 정도가 있는 게 아니었구나. 
어른들은 겪어봤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힘듦을 경시했던 것이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조금 위로가 됐다. 남 눈치만 보며 혹여 힘든 티 내면 널드 취급 받을까 두려웠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힘들어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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