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에서 돌고 돌아 찾은 전속 헤어 디자이너
우간다에서 미용실 갔다가 쫄딱 망했다는 글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전체 글 조회수 중 우간다 미용실 글의 조회수가 절반 이상). 하지만 과거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 더 미용실을 찾았다. 물론 다른 미용실로. 타운에서 가장 큰 미용실(겸 마사지샵)을 검색했다. 별점은 5점이었지만 리뷰는 하나뿐이었다.
https://brunch.co.kr/@nerdkim/24 - 우간다 현지 미용실 대참사 이야기
나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 하나 있다면, 내 머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을 꼽고 싶다. 모국에서도 마음 놓고 머리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불확실성의 연속인 이곳에서 가장 확실해야 하는 영역인 머리 맡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라며 나를 칭찬했다.
이곳에 들어서니 독특한 안경을 쓴 남자가 나를 반기며 자리를 안내했다. 가격표가 없어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2만 실링(6000원 정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쎄보 너무 비싸요. 나 저번에 여기 근처 다른 미용실에서 만 실링이 잘랐어요. 그리고 제 머리 그냥 쉐이빙만 하면 되는 진짜 쉬운 머리예요."
"알겠어요. 그럼 만 오천 실링(4500원 정도)으로 하는 거 어때요?"
에누리는 생활이다. 커트 가격 역시 깎을 수 있다.
한국에서 내 머리를 9년 가까이 잘라준 헤어디자이너 선생님 덕분에 라인에 맞춰 옆머리와 뒷머리만 이발기(바리깡)로 밀면 되는 아주 쉬운 커트였지만 불안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그에게 어떻게 잘라야 하는지 잘 설명했다.
"여기 라인 보이죠? 여기 맞춰서 옆머리랑 뒷머리 3mm로 밀어주시면 돼요"
그에게 믿음이 갔던 이유는 이발기를 잡기 전에 클리퍼로 자르지 않을 머리를 고정시켰다는 점이었다. 이전 미용실에선 그냥 손으로 머리를 세워놓고 그대로 밀었다. 머리를 자르면서 나에게 질문을 건네고 대화를 이어가는 그의 화술에 조금씩 무장해제되었다. 그렇게 내 내밀한 신상(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왔고 루소가를 배우는 중이고 이전에 머리를 잘랐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는 것 등)을 말해버렸다.
샴푸 역시 그가 직접 도맡았다. 눈을 감고 그의 꼼꼼한 손길을 느끼고 있자니 흡사 이가자 헤어비스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전 미용실은 거의 샴푸를 묻히는 수준이었는데 그는 머리를 정말 잘 감겨줬다. 여담이지만 보통 머리를 자른 날엔 잘린 머리카락이 베개에 묻을까 봐 수건을 깔고 자는데 아침에 수건에 머리카락 한 올도 묻어있지 않았다.
머리를 약간 말리더니 갑자기 부탁하지도 않은 스타일링을 시작했다. 여기서는 어떤 스타일을 구사할지, 북방계 검은 머리칼이 생소한 이들은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젤을 듬뿍 발라 빗으로 머리 구석구석을 빗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복고풍 포마드 스타일링이었다. 스타일링을 끝낸 그는 내 머리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내 머리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더니 셀피도 함께 찍었다.
김널드: 머리 너무 잘 잘라줘서 고마워요. 아니 왜 이렇게 머리를 잘 자르는 거죠? 아프리칸 머리는 내 머리랑 완전히 달라서 자르기 힘들었을 텐데 말이죠.
샤리프: 칭찬 감사해요. 여태까지 한 네 명 정도? 아시안 머리를 커트해 본 적 있어요.
김널드: 오 네 명밖에 안 잘라봤는데 제 머리 자르는 게 익숙해 보이던데... 연습을 많이 했나 봐요.
샤리프: 연습은 아니고 일단 제가 머리 자르는 일에 좀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fast learner라는 표현을 썼다). 하하. 그리고 유튜브로 외국인(본인 기준)들 머리 커트하는 영상을 많이 봐요.
일부 우간다 사람들은 본인의 수행 능력에 비해 프라이드가 과도하게 높은 경향이 있는데, 샤리프의 자부심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김널드: 미용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샤리프: 한 6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김널드: 오 생각보다 오래되진 않았군요. 왜 이 일을 하게 됐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샤리프: 원래 어릴 때부터 파트타임으로 미용 일을 잡고 했었어요. 학교로 가서 단체로 학생들 머리를 잘라주는 일도 많이 했었고요.
김널드: 그럼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흥미를 느꼈던 건가요?
샤리프: 사실 본격적으로 미용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제가 학업을 그만두게 되면서에요. 돈이 없어서 학비를 낼 수 없었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 길로 접어들게 됐죠.
즐거운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와중에 들어오는 교육 지속 가능성 문제가 순간 나를 당황시켰다. 돈이 없어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정말 잦다는 걸 절감했다.
김널드: 미용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뭔가요? 뭐 가령 진상 손님이 온다던가, 자신이 커트하다가 실수하거나 뭐 이런 것들일까요?
샤리프: 만약 제가 실수를 해서 스타일이 잘 안 나왔다면 저는 커트 가격을 깎아드려요. 제 잘못이니까요. 그런 부분이 힘든 점은 아닌 것 같아요.
김널드: 그럼 가장 힘든 점 딱 하나만 꼽는다면 뭘까요?
샤리프: 손님이 무슨 스타일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원하는 스타일을 최대한 정확히 알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손님이 말해도 못 알아듣거나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지 않을 때 갑갑해요.
손님 입장에서 미용실에만 가면 이상하게도 언어를 담당하는 신경 중추의 기능이 마비된다. 하지만 정작 더 답답한 것은 머리를 잘라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겠다는 생각을 난생처음 하게 됐다. 무엇보다 미용실에서 고객과 헤어디자이너 사이의 묘한 긴장감은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널드: 보통 이곳 사람들은 미용실에 얼마나 자주 와요? 저 같은 경우엔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거든요.
샤리프: 머리 스타일 따라 다른데 bald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경우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죠. 제 머리 스타일은 2주에 한 번 정도 손질해야 하고요.
김널드: 아 마지막으로 제가 지난번 근처 다른 미용실 갔었어요. 샴푸 끝나고 머리를 말릴 때 빗으로 제 머리를 펴서 물기를 제거하더라고요. 제 머리는 아프리칸 머리는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죠. 하하.
샤리프: 빗으로요? 무슨 빗을 말하는 거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김널드: 아니 일반 빗으로 머리를 쓸면서 물기를 제거하던데. 그래서 아프리칸은 엄청 곱슬머리라 그렇게 해서 일반적으로 물기를 제거하는 줄 알았어요.
샤리프: 저도 처음 듣는 걸요. 아마 그 친구 프로가 아닌 것 같아요. 거기 미용실이 어디라고요?
단골 고객 머리를 바가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화를 내는 이 친구를 보면서 우간다 미용실에서 받았던 과거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됨을 느낄 수 있었다. 우간다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