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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Apr 09. 2019

우간다가 별로일 수 있습니다.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이곳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계약할 때 나는 좀 까탈스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단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코이카의 요구 사항이 아무래도 많을 수밖에 없고 나는 코이카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니, 이것저것 집주인 어니스트 씨에게 물어봤다. 집에 경비원을 고용할 수 있냐는 물음에 집주인 어니스트 씨는 웃음 지으며 우간다의 상황을 설명했다. 경비원을 고용하면, 신뢰 관계가 두텁지 않은 이상 오히려 경비원이 집을 털거나 혹은 절도 범죄를 공모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비를 두기를 꺼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마디 덧붙였다. 

"This is Uganda."

 밤에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경비보다 더 든든하다(2019.04.07)

두 달 전쯤 취미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기타를 사러 악기점에 들렀었다. 캄팔라에서도 악기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현지인의 추천을 받아 갔건만, 규모가 많이 소박했다. 낙원 상가는커녕 어릴 적 우리 동네 영창 피아노 판매점 한 곳보다도 악기가 적었다. 보통 악기점에서 기타 한 대를 사면 케이스, 피크, 카포, 여분의 기타 줄, 심지어 교본까지 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역시 달랐다. 기타를 구입할 때도, 정말 기타 한 대만 덜렁 주려고 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그저 기타를 노란 이등변 삼각형 박스에 담는 게 전부였다. 나를 보더니 싱긋 웃으며 보다보다까지 잡아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케이스는 안 주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This is Uganda."

우간다 낙원 상가. 캄팔라 오순절 교회 근처(2019.02)

각종 우간다 국내 토론 대회, 글쓰기 대회에 나갔다 하면 입상하는 똑똑한 학생을 인터뷰하고 싶어서 행정실 직원 분께 그 학생을 불러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한참을 뭔가 뒤적거리더니 내게 돌아와 그 학생이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오지 않았는지 묻자, 아마 아침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약간의 황당함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그러자 그녀는 날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This is Uganda."




맥주 몇 병을 사기 위해 집 앞 마켓에 있는 Liquor shop에 처음 갔을 때 일이다. 이곳에서는 병맥주를 사면 원래 맥주값에 병 보증금을 추가로 더 받는다. 다 마신 병을 돌려주면 냈던 병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스피커가 찢어질 듯한 아프로 비트 음악 사이로 간신히 맥주병 환급 시스템에 대해 알아 들었다. "그래서 맥주 한 병에 얼마예요?" "4000실링이에요." "그럼 한 병당 1000실링씩 추가해서 네 병 사면 20000실링이네요." 갑자기 리쿼샵 냐보가 22000실링이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녀는 내가 말을 하려고 하면 듣지도 않고 2000실링을 더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우리나라 돈을 600원이라 실랑이를 포기하고 싶다가도, 오기가 생겨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그냥 벽을 보고 화를 내는 수준이었다. 이 광경을 보다 못한 한 아저씨가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왔다. 5000실링 네 병을 사는 거라고 말하자 그 아저씨는 폴더폰으로 계산기 기능을 켰다(계산을 못해서가 아니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며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있었다). 계산기는 정확히 20000이라는 숫자가 찍혔고, 그 계산 결과를 냐보에게 보여줬다. 그러더니 그 냐보는 세상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This is Uganda"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저기 깊숙한 어딘가 있는 리쿼샵(2019.03)



내 집을 털지도 모르는 경비. 비가 많이 오면 결석하는 학생. 기타를 케이스가 아닌 박스에 담아주는 게 당연한 악기점. 계산이 서툰 술집 주인. 현지인들은 겸연쩍은 상황에서 다 같이 짠 것처럼 이곳은 우간다임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이야기들이 외부인의 인식 속 '우간다'라는 관념을 채운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귀납적 추론, 일반화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나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카페에 선글라스를 두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직원이 내 선글라스를 보관하고 있을 때. 비가 와서 결석한 학생이 자신이 받은 장학금을 더 어려운 학생에게 기부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제 나를 보면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배꼽 인사하는 학생들을 볼 때. 미용실에서 드디어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 자르기에 성공했을 때. 절대 못 고칠 줄 알았던 노트북 충전기를 로컬 마켓에서 고쳤을 때.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한다. 

"This is Ug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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