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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Apr 20. 2019

넥타이도 못 매고 운전도 못하는데 어른 될 수 있나요?

우간다 스물아홉이 하는 고민은 한국의 스물아홉이 하는 고민과 다르다


스물아홉. 친구들은 대부분 취직에 성공했다. 심지어 그 어렵다는 결혼도 하나둘 해내기 시작한다. 친구들뿐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착실히 닦아 온 후배들도 이제 취업 시장, 결혼 시장에 뛰어들어 승전보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제 친구들의 대화는 정말 '어른들의 대화'처럼 느껴진다. 주택 청약, 결혼 문제, 차 할부 등 정말 어른들이 하는 고민들을 내 친구들이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한다. 맨 처음 내 친구들이 이런 '어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들이 아빠 양복을 몰래 입고 뿌듯해하는 꼬맹이 같이 느껴졌다. 내 친구를 그런 복덕방에서 오갈 법한 이야기를 하는 어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의 주제가 우리 대화 시간의 지분을 늘려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청첩장을 돌렸으니 축의금 수지도 계산해봐야 하고, 취업을 했으니 직장과 직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빚을 내어 차를 샀으니 차 할부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고, 3년을 기다려도 주택 청약에서 맨날 물만 먹으니 분풀이를 해야 한다. 안 맞는 아빠 양복을 꾸준히 몰래 입으니 이제 그 양복도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 친구들이 어른이 된 걸 인정해야 했다.

스물아홉. 십 년 전쯤만 해도 스물아홉이면 애 딸린 아빠가 되어 동창회에 넥타이 매고 나오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십 년 전까지 가지 않아도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는 장롱 면허라 운전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넥타이도 맬 줄 모른다. 캐주얼을 추구하는 힙스터라고 자신을 포장하지만 나는 양복 한 벌도 없다. 어른이라면 갖춰야 할 중요한 세 가지 중 갖춘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뭐 하다가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걸까? 그 기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나 자신을 범인으로 위치시키지 않았다. 나는 비범했고, 비범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비범해지고 싶다면 남들과 같은 인생 곡선을 애초에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평범해지고 싶어서 애간장 태우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들 그렇게 하는 시기에 그렇게 하고 싶은.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원칙이 나만의 도덕률처럼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렇게 근 2년은 평범해지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그렇게 애를 써보니, 평범해지는 게 사실 더 어렵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 취업 시장에서 어떻게든 버텨 승전보를 평범해져야 할 때, 덜컥 아프리카라는 곳에 해외 봉사를 가겠다는 무모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비범해 보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 몸 먹여 살려야 한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대책도 없이 우간다에 왔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1년 동안 나는 어쩌면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간을 허락받은 셈이다. 이 시기가 봉사 이외에 어쩌면, 내 삶을 잠시 관조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막상 와보니 내 삶을 되돌아보고 관조할 기회인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후의 내 미래를 집중력 있게 그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힘들었다. 기자가 정말 되고 싶은지 나에게 질문하는 것보다, 당장 집안에 출몰할지도 모르는 바퀴벌레가 훨씬 더 신경 쓰였다.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전기가 끊기지 않은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내 내면을 채웠던 고민과 질적으로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스물아홉의 내 친구들에게는 공유되기도 공감을 얻기도 어려운 것들이었다. 전세 얻느라 빚을 낼지 고민하는 평범한 스물아홉, 직장에서 일 끝나고 돌아서니 또 업무가 하달되어 스트레스받는 평범한 스물아홉. 그렇지만 나는 빨래만 널었다 하면 쏟아지는 비 때문에 빨래 건조대를 사야 할지 고민하고, 점심 먹고 돌아서면 저녁 끼니로 뭘 해야 할지 스트레스받고 있었다.

 


덕분에 어른이 되기를 또 유보해야 한다. 다들 어른이 잘 되던데, 나는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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