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널드 Apr 17. 2019

용기 내어 말을 걸면 천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발도상국이라고 사람들의 인식 수준까지 개발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의지 부족’으로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간단한 접촉을 하거나, 속내를 털어놓는 일이 드물다. 그리고 그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면 아무도 돕지 못하고 도움을 받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 우월해 보이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천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 파울로 코엘료 <마크툽> 中


정말로 별 일도 아닌데, 막상 하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는 일이 있다. 바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보는 일이다. 나의 경우엔 부끄럽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조차 영 쉽지 않다. 이곳에서는 외국인이기도 하니 더 그렇다. 사실 교사가 학생을 부른다면, 누가 봐도 학생이 훨씬 더 긴장할 텐데 말이다. 여하튼 이렇게 쉽게 긴장하는 내게, 말을 걸어야겠다는 용기를 갖게 한 학생이 생겼다. 바로 Masolo Terry다. 

사진 찍으면 다소 수줍어지는 테리(2019.04)

테리를 처음 본 건,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Student Assembly때였다. S5(우리나라로 치면 고2 정도)인 테리가 학생들 앞에서 상을 받았다. 들어보니, 테리는 'Girls' Voice Challenge'라는 프로젝트로 100달러(USD)의 상금을 받았고, 그 상금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개발도상국에서 100달러의 가치는 결코 11만 원 정도가 아니다. 이곳에선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이다.

교장선생님께 칭찬 듣는 Girls' Voice Challenge 프로젝트 멤버들. 왼쪽이 교장선생님, 그 옆이 테리다(2019.03)

수업에 들어가지도 않는 학년이지만, 테리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분명 자신도 넉넉하지 않은 처지일 텐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교장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테리를 찾았고, 그렇게 이야기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테리야. Student Assembly에서 네가 상금을 다른 학생들에게 기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았어. 네가 했던 Girls' Voice Challenge 프로젝트에서 뭘 했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

"Girls' Voice Challenge에서 비디오 클립을 만들고, 에세이를 썼어요. 여학생들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말이죠. 아직 우간다라는 곳이 딸의 교육에 대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어?"

"일단 아이를 많이 낳지만, 딸은 결국 남의 집으로 가는 아이들인지라 노동력이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죠. 빨리 시집가서 집에 돈이 되는 편이 낫지, 학교 다니느라 결혼도 늦게 하면, 경제적으로 가정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학비만 드는 셈이니 딸의 교육에 부정적인 거죠. 이러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그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어떻게 다른 학생들에게 상금을 기부할 생각을 했어?"

"제가 만든 비디오랑 에세이의 주제가 여학생들의 교육 기회잖아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교육 기회가 제한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뤘으니, 당연히 그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테리의 부모님은 진자 시내에서 신발을 팔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형편도 그리 넉넉지 않지만, 테리는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을 먼저 생각했다. 이쯤 되니 테리가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졌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니'따위의 질문은 어린 친구들에게 딱히 할 말이 없는 꼰머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테리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나머지, 이번 한 번은 꼰머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회계 감사관(Auditor)이요."


다소 생뚱맞은 직업 선택이었다. '그래 너도 결국은 돈을 벌어야 해서 이런 직업을 선택하는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해놓고는 왜 회계 감사관이 되고 싶냐는 2차 꼰머 질문을 이어갔다.


여기 고질적인 문제가 바로 부정부패잖아요. 제가 회계 감사원 되면 부정부패를 바로잡고 싶어요. 그렇게 예산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면, 여성 교육을 위한 예산이 결코 허투루 쓰이지 않겠죠.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건다는 건 정말로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내가 테리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개발도상국이라고 사람들의 인식 수준까지 개발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내가 테리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천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전 28화 91년생인 내가, 책에서나 봤던 최루가스를 맞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