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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Mar 16. 2019

우간다에서 마주한 6000원어치 고민

이전까지 내 6000원짜리 고민은 기껏해야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 있었다.

*'Abantu mu Uganda'는 '우간다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우간다에서 장문의 편지를 받았었다. 내가 파견된 기관이 여자 중·고등학교다 보니 내심 우간다 국민첫사랑이 되는 신호탄이 아닌가 김칫국을 마셨지만 정작 장문의 편지는 내가 일하는 학교 학생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었다.  

지난번 브런치 글에도 올린 적 있는 문제의 편지

편지 세줄 요약

- 잘 지내니

- 50000실링 줘

- 스마트폰 사 줘

https://brunch.co.kr/@nerdkim/29 - 이 편지에 대한 이전 글


앞선 글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내게 이렇게 정성스러운 편지를 쓴 친구는 내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주인의 친동생인 어니스트다(집주인과 영어 이름 동일). 이 편지를 받고 한동안 이 친구가 집 주변에서 보이지 않다가 오늘에서야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아직 퇴근하지 않았던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약간의 긴장과 분노를 절제하며 집으로 향했다.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혔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어니스트 친구에게 내가 그저 돈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일부 우간다 사람들, 더 나아가 아프리카 사람들은 피부가 자신들보다 하얀 사람들을 그저 돈으로 보곤 한다. 무엇보다 어니스트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았다. 그는 이곳 집주인의 친동생이기 때문이다. 내 집주인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집만 보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내 집 옆으로 쭉 들어서 있는 집들을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배경이 있는데 이 어니스트 친구의 요청이 그냥 용돈벌이 하고 싶은 걸로 들릴 수밖에.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땐 부담스러웠는데, 제대로 된 대화를 하고 싶어 졌다. 왜 이 친구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런 부탁을 할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친구를 이해해보고 싶었다.



널드: 학비랑 스마트폰 필요하다고 편지 썼죠?
어니스트: 네. 지금 제가 형편이 진짜 좋지가 않아서요.
널드: 학교 등록금 필요한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학교 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어니스트: 네. Jinja Secondary School 다니고 있어요. 
널드: 그럼 학비가 필요 없는 거네요.
어니스트: 그런데 교재랑 이런 걸 구입해야 해서요... 20000실링이 필요해요.
널드: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서 돈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거죠?
어니스트: 네
널드: 그럼 편지에 스마트폰도 사달라고 했던데 스마트폰이 학업을 지속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여기서 어니스트는 약간 당황했다. 갑자기 일어나서 뭔가 애써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 대화부터 내게 꼬박꼬박 'sir'을 붙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제가 A레벨 과목으로 들어야 하는 것 중에 ICT(컴퓨터)가 있는데 아무래도 스마트폰이 있으면...(본인도 민망해서 말을 못 이어갔다)
널드: 솔직히 이렇게 돈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별로 기분이 좋진 않아요. '그냥 나를 돈으로 밖에 안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그리고 제가 여기 온 이유는, 그냥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서 온 게 아니에요. 제가 있을 때만 제게 의지해서 그저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여길 떠나더라도 제 도움 없이 여기서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아무것도 없이 대뜸 돈만 달라고 하면 제가 여기 온 취지와 전혀 다르다는 걸 이해하겠나요?
어니스트: 네. 
널드: 정 학업을 위한 돈이 필요하다면, 지금 상황에서 어니스트한테 줄 수 있는 돈은 없어요. 최소한 이번 학기에 친 성적이나 리포트 결과라도 가지고 와서 본인이 열심히 공부했다는 걸 증명해줘야 이 제안을 다시 고려해볼 수 있겠죠. 이해하겠나요?
어니스트: 네... 그렇지만 교재가 없으면 당장...


널드: 집주인 분이 친형이잖아요. 
어니스트: 네.
널드: 형한테 이야기는 해본 거예요? 뭐라던가요?
어니스트: 형은 자녀들 학비 대고 다른 것들 한다고 제게 줄 수 있는 돈이 없대요. 저희 엄마도 그랬고요.
널드: 다른 형제들은요?
어니스트: 누나 두 명이 더 있는데 한 명은 캄팔라에 있고 한 명은 미국에 있어요.


더 이상 논의를 진행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집주인의 자녀는 3명인데 3명 다 Primary school에 재학 중이다. 우간다 primary school을 진학할 때 학비로 내야 할 돈은 없다. 정부가 무상교육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무상교육은 아니지만 설사 있더라도 이곳 집주인이 감당 못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내가 일하는 기관인 PMM은 secondary school인데도 한 학기 학비가 260실링(한화 약 80원)에 불과하다(교장에게 맨 처음 학비를 들었을 때 잘못 들은 줄 알고 여러 번 다시 물어봤다).

집주인 자녀 세 명. 왼쪽부터 패트릭, 조슈아, 페이션스. 아빠 눈을 피해 내 집 창문에 매달리는 새로운 취미 생활에 푹 빠져있다.


널드: 그런데도 돈이 없다는 게 저는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돼요. 일단 이번 학기 5월 초에 끝나죠? 시험이나 리포트 결과라도 가지고 오면 그다음에 이 제안 고려해볼게요. 일단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어니스트: 네 감사합니다.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고, 오늘 대화와 사진을 내 개인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이야기도 하고, 초코파이도 손에 쥐어 돌려보냈다. 

밀레니엄 베이비들의 사진 촬영. 오른쪽이 어니스트. 왼쪽은 그의 친구.


집에 돌아와 지갑을 열어봤더니 하필 20000실링이 딱 있었다. 20000실링은 한화로 6000원 정도. 나는 20000실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갑자기 나 자신이 너무 경멸스러워졌다. 고작 6000원을 줄 수 있다는 위치에서 비롯된, 기울어진 대화를 40분 가까이 이어간 나 자신이 싫었다. 어니스트가 쓴 편지의 이면을 이해하고자 시작한 대화였는데, 정작 대화에서 내가 어니스트를 이해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어니스트에게 나를 이해시킨 것만 있었다. 이 모든 게 고작 6000원 때문이다. 식당에서 가끔 먹는 파스타가, 냉장 소고기 다짐육 1kg이, 4GB 모바일 데이터가 20000실링이다. 그리고 나는 앞서 말한 세 가지를 결제할 때 나는 일말의 주저함이 없다.


왜 나는 한 끼 외식 6000원은 잘만 쓰면서 도와달라는 이에게 쓰일 6000원에 엄격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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