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널드 Apr 23. 2019

첫인상 안 좋았던 학생이 장학금 받게 된 사연

공자님도 울고 갈 우간다 소녀의 공부 철학


공자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강조하고 '위인지학(爲人之學)'을 경계했습니다. 학문을 하는 이유를 자신의 성숙에 맞춰야지, 타인의 인정에 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나를 위한 공부인 위기지학보다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공부는 남 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며 공자님 말씀에 반기를 듭니다. 4대 성인과 한 판 붙어야 할 이는 17살의 우간다 소녀입니다.


마음은 거대한데 할 수 있는 건 미약할 때, 이 학생을 봤습니다.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첫 한 달이 지나고, 학생 종례에 참석했는데 한 학생이 상을 받더군요. 그 학생은 자신이 받은 상금 100달러를 더 어려운 학생을 위해 기꺼이 기부했습니다. 제겐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할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대단히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이들의 삶의 본질을 바꾸는 데 필요한 일을 이미 그 학생은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저와 마솔로 테리라는 학생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테리와의 첫만남. 왼쪽부터 교장 선생님, 테리. girls' voice challenge 프로젝트로 받은 상금을 전액 기부했다. 교장 선생님은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말랐다.



테리를 처음 본 순간 솔직히 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봉사단원으로 와서 아직 적응하기도 벅찼는데, 테리는 자신의 글과 콘텐츠로 100달러의 상금을 받고 그 상금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개인용품까지 더해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여학생들을 도왔습니다. 이런 테리를 보고 있자니 처음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건만 테리는 자신과는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그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엔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내적 성장과 만족감을 즐기며 공부를 합니다. 학업을 대하는 태도에 정답은 없지만, 자신의 내적 성장을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테리는 본인을 위한 공부가 아닌 남을 위한 공부를 해왔습니다.

테리는 글쓰기와 토론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뚜렷하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여학생들이 직면하는 학교 문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직까지 딸의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가정이 많은 이곳 우간다를 변화시키는 것이 테리의 꿈입니다.

그런 테리의 꿈을 듣고 있자니, 자연스레 테리가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테리는 제 예상과는 달리 회계 감사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예상과 다른 꿈이라 제가 물었습니다. "회계 감사원은 돈을 벌고 싶어서니?" 17살 소녀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우간다의 고질적인 문제가 부정부패이고, 자신이 회계 감사원이 되어 부정부패를 바로잡아 예산을 제대로 관리할 수만 있다면, 여성 교육을 위한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목표와 꿈이 오늘도 연필을 쥔 테리의 손가락 끝에 실려 있습니다.

사실 추천서를 쓰는 지금까지도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저는 저보다 그릇이 큰 사람을 추천해야 하는 다소 민망한 상황을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테리가 이 자그마한 도움으로 더 많은 타인을 바라보고 공부할 수 있다면, 이 민망함도 참을 만한 것이 될 것 같습니다. 테리는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더 멋지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학생입니다. 테리는, 말 그대로 자신의 희망을 나눠왔고, 앞으로도 나눌 학생입니다. 이것이 제가 테리를 희망나눔장학생으로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 테리 장학금 추천서 전문



장학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교장 선생님의 추천서도 필요하다고 하자, 친절한 PMM의 교장 선생님은 정성스럽게 추천서를 써주셨습니다. ‘학생을 돕기 위해 뭐든 하는 것이 자기의 일’이라며 말입니다.

2016년 우간다 전국 토론대회에서 1위를 해 방콕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 나갔어야 했지만 돈이 없어 그러지 못했던 슬픈 사연은 덤.



제 돈 11만 원을 그냥 주는 게 더 편하고 빠르긴 할 겁니다. 교장 선생님 추천서도 따로 필요 없고, 다른 서류와 사진, 첨부파일 같은 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의 도움 그리고 그 도움을 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테리 본인의 멋진 가치관과 실력 덕분에,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100달러의 장학금을 KOVA로부터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자 지역의 평균 연간 소득이 2000달러가량 됩니다. 100달러의 규모가 정말 우리의 생각 이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장학금을 신청만 했고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고 설명을 해도, 테리와 그의 선생님, 교장 선생님은 정말 고맙다며 저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직 테리에겐 장학금 소식을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내일이 되면 테리도 알게 되겠죠.

장학금 신청용 사진이라는 말에 한껏 다소곳한 표정짓는 테리


공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테리도 이 땅을 변화시킬 기적을 만들어낼 것만 같습니다.


p.s 공자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공자님보다 테리가 학문을 대하는 자세가 더 멋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간다 국민첫사랑에서 '폐하'가 된 사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