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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May 04. 2019

우간다에서 첫 학기를 마무리하며

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처음 학교에 발을 디딘 지 세 달 정도 지나니 첫 번째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간다 학제는 3학기제라 방학 역시 세 번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방학을 제외하면 다른 두 방학은 3주 정도 됩니다. 우간다에서의 첫 학기는 적응 기간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많은 일을 하지 않고 편하게 보냈다고 자평할 수 있겠습니다. 일주일에 맡은 정규 수업 3개, 직접 개설한 방과 후 요가 클럽 1개, 이외에 코이카 예산을 편성받아 기관에 기본적인 체육 용품을 구매했고, 아주 착실하고 멋진 학생을 만나게 되어 장학금을 연결한 게 이번 학기 제가 한 일의 전부입니다.

이곳에서 시간이 조금 지나니 점차 제 문제의식이 옅어진다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적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겐 ‘안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디서든 적응을 잘해왔던 편이었습니다. 물론 우간다만큼 제 일생과 전혀 다른 특징들로 가득 찬 경험은 이전까지 없었지만, 우간다 생활 역시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기관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기관장과 좋은 코워커를 만나는 행운을 얻다 보니 제 요구 사항이나 제안에 대해 언제나 긍정적인 대답을 듣기만 했습니다. 우간다라는 곳이 일상이 될 줄은 몰랐는데, 일상이 되다 보니 적응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

조정래 작가가 소설 <정글만리>에서 중국을 비유한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표현이 제 뇌리를 스쳤습니다. 생활에 안주하는 것이야 뭐 좋게 말하면 ‘안빈낙도’겠지만, 이곳 기관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떤 것들을 필요로 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바라 보는 시야가 흐려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문제 의식이 희석되는 것입니다. 사방 천지가 문제라면 문제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잡고 있는 문제 의식을 남기는 작업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1. 정규 교과에서는 당최 찾아볼 수 없는 예체능

이 빼곡한 시간표에 음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2019.02)

일생을 무용한 것들로만 채워왔던 제게, 예체능 과목이 없다시피 한 이곳 환경이 처음에 몹시 낯설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작황, 회계, 수질 개선, 의식주 해결과 같은 것들이 이 땅의 본질을 건드리는 문제인데 저는 그저 일평생 무용한 것들만 배워 왔기 때문입니다. 예술, 문화, 스포츠가 삶의 본질을 바꾸진 못할지라도 삶의 질은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을 뿐입니다.
아프리칸에게 기대하는 common racism 중 하나가 예술적 능력입니다. 그런데 정작 아프리칸의 예술적 기질을 계발시킬 수 있는 인프라는 전무합니다. 일단 학교 수업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A-level, O-level 테스트에 밀려 음악, 미술 수업은 교사마저 없습니다. 그마저 있는 체육도 S1, S2(우리로 치면 중1, 중2)에게만 허락됩니다. 따라서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준비를 정규 교과목만으로는 할 수 없는 곳이 현실입니다. 스포츠 클럽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2.  수건을 생리대로 쓰는 학생들
건강한 성 인지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임기 여성의 인생에서 1/4을 차지하는 시간만큼은 건강하고 안전하게 대처하길 바라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생리에 대한 이곳의 환경은 열악하기만 합니다. 우간다에서도 잘 사는 곳으로 꼽히는 진자 지역이건만, 여전히 일회용 생리대를 매번 구매하는 것은 큰 경제적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기본적으로 네다섯 명이 있는 집에서 일회용 생리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하기 때문입니다. 책으로나 접했던 이곳의 생리 문제가 실제로 그러한지 확인하기 위해 몇몇 병원으로 가 의사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책보다 적나라했습니다. 일회용 생리대를 살 수 있는 가정이 많지 않아서 수건을 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옷감을 찢어서 생리대처럼 쓰고 있었습니다. 1번 문제와는 달리 생리는 여성 삶의 본질을 건드리는 문제이기도 한 만큼 생리대 제작 교육 및 성 인지 교육은 - 제 분야가 아니더라도 - 사명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한국어 처음 알려준 날. 이후로 이들은 한국어로만 인사한다(2019.02)


3. 운동장

체육에 임하는 전투적인 자세. 샤넬 슬리퍼를 이렇게나 막 신는 우리 친구들(2019.03)

잔디 깔린 너른 운동장이라 사진으로 보기엔 대단히 훌륭하지만, 평탄화되어 있지 않고, 잔디 길이가 엉망입니다. 이곳 학생들은 맨발로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걸 선호하는데, 그러다 보니 운동장 상태가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곳 학생들에게 운동장은 쉬는 장소이자, 식사 장소이기도 합니다. 풀밭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마치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이 드넓은 캠퍼스에서 전공서적을 머리에 펴놓고 잠깐 낮잠을 청하는 것처럼)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르지 못한 운동장 바닥은 학생들에게 언제나 잠재적 위험 요소인 셈입니다. 운동장에 있는 벤치 역시 다소 당황스러운 편인데, 저는 10분 이상 앉아있기 어려울 만큼 짓다 만 듯한 벤치도 개보수 대상 중 하나입니다.

테리 재등판. 이곳 학생들은 편하게 앉아 있는 편(2019.04)


4. 도서관
역시 매우 넓긴 하지만 시설 자체가 열악합니다. 도서관이 시험 장소나 회의 장소로 쓰이는 등 쓰임이 많기 때문에 도서관 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면 학교의 전반적인 질 자체가 향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장서 보관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기숙사 학생의 경우 밤이 되면 이곳 저곳 밖으로 나와 불빛이 있는 곳에 혹은 달빛이 있는 곳에서 불편한 자세로 공부를 하는데, 도서관 개보수가 이를 조금은 개선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험 치는 중인 학생들. 수학 시험이 즐겁나보다. 도서관 내부는 언제나 항상 더운 공기로 가득하다(2019.04)


5. 화장실
화장실은 교육, 특히 여성 교육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화장실 시설이 열악해 실제로 여학생들이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소득 국가일수록 이러한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 간 서울시를 중심으로 학교 화장실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실제 화장실 환경 개선은 학생들의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지표라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여학교인 까닭에, 그리고 아직 선뜻 여자 화장실을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볼 수 있을 만큼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화장실 내부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외부를 보고 판단하건데 화장실 상황이 그다지 좋을 것 같진 않았습니다.

Literally 맨발의 청춘. 요가 세션 끝나고 처음 배운 손가락 하트(2019.03)

세 달 동안 본 문제점은 대략 이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열거했으니 여기서 하나는 해낼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봉사 임기가 끝날 때쯤 이 글이 슬그머니 지워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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