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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Dec 15. 2018

우간다에서 엄마 생각

무책임한 엄마를 위한 변명

해외봉사단원으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면 당연히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특히 그 역할과 책임이 막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보편적으로 한 가정 내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이는 당연하게도(그래서 안타깝게도) 엄마라는 존재다. 아직 대부분 남편은 아내 없는 삶을 살아가길 버거워하며, 장성한 자녀라 할지라도 엄마의 품이 없는 것을 불안해한다. 자신의 이름을 지니고 있던 여성이라는 주체는, 결혼을 통해 또 출산을 통해 서서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라는 객체로 인식된다. 그리고 이 객체의 굴레는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파견을 준비하는 국내교육 기간은 같은 기수 봉사단원 동기를 만날 수 있는 시기다. 90명가량 되었던 동기 선생님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포진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50세 이상 남자 선생님과 여자 선생님을 바라보는 온도 차는 극명히 드러난다. 커리어를 잘 마무리하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한 남자 선생님. 남편과 자녀의 허락을 어떻게 받았을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여자 선생님. 허락과 양해 없이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어려웠다. 그들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시선이 그곳에 있었다.


11월 초에 시작된 국내교육 기간 중 한 시니어 선생님께서 아들의 수능 때문에 본부에 양해를 구하고 외박을 나갔던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듣고, 교육에 복귀하신 선생님께 정말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들이 수능인데, 저 참 무책임한 엄마죠?" 선생님의 말씀이 불현듯 아프게 다가왔다. 본인의 해외봉사와 아들의 대입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정의 내리는 사회에서 그 선생님이 주위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선생님 그것보다 어떻게 더 아드님을 챙길 수 있겠어요. 선생님이 저희 엄마라면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할 것 같아요." 같이 걸어가면서 짧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우간다로 건너온 지금에도 함께 파견 온 네 명의 봉사단원 중 시니어 선생님이 계신다. 선생님 역시 봉사단원이기 전에 엄마이자 아내였다. 이미 스리랑카 파견 경험이 있는 선생님이시지만 여전히 자신의 결정에 대한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자녀를 신경 쓰지 않는'이라는 수식어 뒤에 '엄마'가 붙느냐 '아빠'가 붙느냐에 따라 사회가 주는 면책의 정도는 아직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나는 우리 선생님과 같은 엄마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선생님 같은 엄마가 주위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책임한 엄마라며 자조하지 않아도 괜찮으면 좋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엄마와 아내의 행보가 누군가에게 설득시켜야 할 무언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은 높게, 현실은 낮게, 사랑은 진하게" 를 말하는 모습


우리 선생님께서 언젠가 했던 건배 제의처럼

현실은 낮지만 이상은 높게, 그리고 사랑은 진하게


우리 엄마가, 좀 더 가능하다면 우리 엄마들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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