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농의 샘'을 본 것은 대학생 때이다. 당시 가장 좋은 극장 중 하나였던 '호암아트홀'에서 상영을 했다. 요즘으로 보면 예술영화 전용관의 모습도 약간 보이던 품격 있는 곳이었다.
호암아트홀은 다른 일반 극장과는 구별되는 곳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도 극장 같지 않았고, 좌석이나 내부 스피커 시스템도 당시 최고였다. 스크린 크기는 조금 아쉬웠지만, 당시 음향시설만큼은 매니아들이 인정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었다.
건물 자체도 조용한 분위기에 갈색톤의 내부 인테리어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곳이어서, 마음에 드는 영화를 상영할 때면 호암아트홀을 가곤 했었다.
상영작으로 '마농의 샘'이 결정되었을 때, 호암아트홀 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긴 상영시간을 가진 예술적인 느낌의 프랑스영화였으니까.
'마농의 샘'은 크게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서 중간에 잠깐 끊어진다. 원래는 '플로레트의 쟝'과 '마농의 샘' 이렇게 2개의 영화이기 때문인데, 우리나라에서 두 개의 영화를 한 편의 영화로 상영한 것은 잘한 것 같다. 아무래도 오락성 있는 영화가 아니라서 두 젼을 모두 보는 사람이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각 편이 2시간 정도 분량이라서 이 영화 '마농의 샘'은 무려 4시간 정도의 상영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마농의 샘'은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농민 3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긴 상영시간과 서사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상당히 단순하다.
'세자르' (이브 몽땅)는 조카 '위골랭' (다니엘 오떼유)과 살고 있다. 카네이션 재배를 하려고 했으나, 이들의 땅에는 물이 없다. 이들은 이웃 농장에 샘이 있음을 알고 그 땅을 싸게 사기 위해서 몰래 샘을 막아버린다.
그 농장은 한 때 '세자르'의 연인이었던 '플로레트'가 주인이었었는데 '플로레트'가 죽고 그녀의 아들인 꼽추 '쟝' (제랄드 드빠르디유)이 주인이 되어 아내와 딸 '마농'을 데리고 도시에서 이사를 온다. '쟝'은 착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세자르'와 '위골랭'의 위선적인 행동과 마을 사람들의 따돌림, 게다가 계속되는 가뭄으로 우물을 파려 하다가 죽는다. 그리고 '세자르'와 '위골랭'이 막았던 샘을 도로 트는 것을 '마농'이 본다.
여기까지가 1부라고 할 수 있는 '마농의 샘 Jaen de Florette'의 이야기이다. 어려움에도 착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려고 하는 '쟝'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운 영화이다.
10년 후, '세자르'와 '위골랭'은 카네이션 재배에 성공하고, '마농' (엠마뉴엘 베아르)은 양치기 처녀로 성장한다. 어느 날 '위골랭'은 '마농'에게 반하게 되고 계속 구애한다. '마농'은 샘의 근원을 막아 마을의 물을 마르게 함으로써 그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한 그대로 돌려준다. '위골랭'은 '마농'에게 거절당한 충격으로 자살하고, '마농'은 좋아하던 선생인 '베르나르'와 결혼하고, '세자르'는 하객으로 온 '플로레트'의 친구에게 '마농'이 자신의 손녀라는 말을 듣고, 깊은 잠 속에 빠져든다.
2부 격은 '마농의 샘 2 Manon of the Spring'은 '마농'의 복수 이야기이다. 1부에 비해서는 조금 더 다이나믹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농의 샘'은 당시 프랑스의 스타들이 모여서 만든 영화이다. '이브 몽땅'은 프랑스의 대표 배우 중 하나로 '공포의 보수', '제트', '암흑가의 세 사람' 등의 작품이 있다. '다니엘 오떼유'는 '마농의 샘' 이후에 '여왕 마고', '제8요일' 등의 좋은 작품을 하면서 톱의 위치에 올랐다. '제랄드 드빠르디유'는 '까미유 끌로델', '시라노', '그린카드', '아스테릭스' 외에도 많은 영화를 찍은 프랑스 대표 배우이다. 그리고 '엠마뉴엘 베아르'는 이 영화로 알려지게 되어 이후 '천사와 사랑을', '미션 임파서블' 등의 헐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하여 인기 스타가 되었다.
'마농의 샘'은 지루할 수 있는 느린 영화이다. 단순한 이야기를 4시간에 걸쳐서 펼쳐내고 있고, 출연진도 후반부의 마을 사람들을 제외하면 상당 시간 동안 극히 소수의 인물들만 보인다. 극장에서 보지 않고, 파일로 본다면, 아마도 넘기는 장면이 많거나 보다가 말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영화야 말로 극장에서 보는 묘미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가다 보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대한 서사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영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