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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제이 Jun 13. 2019

크라잉 프리맨, 루안살성

어렸을 때, 일본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일본 만화책이 정식으로 들어와서 발간되지 못하고 대신 대량으로 불법 복제되어 출간됬었다. 출간되었다고는 하지만 정식 출판사는 아니었고 해적판이라고 불렸었다.  일본 만화들은 불법 복제된 해적판이었지만 당시에는 비밀스럽게 거래된 것이 아니라 대놓고 팔았으며 인기도 높았었다. 해적판도 급이 있었는데 그에 따라 가격과 퀄리티가 차이가 났다. 한 손에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에 불법복제라는 것이 그냥 인식될 정도로 인쇄상태도 좋지 않았던, 잘 보이지 않는 그림을 뚫어져라 보곤 했었던 누가 봐도 불법 복제라고 생각할 해적판이 그 하나다. 그 옛날 사 놓았던 이런 해적판을 다시 쳐다보니 볼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그 때는 그걸 어떻게 봤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판형도 크고 종이질도 좋고 인쇄 상태도 양호해서 정품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퀄리티의 해적판이었다. 사면서도 해적판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정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샀던 그런 만화책이다.

그 당시 일본의 인기 성인 만화도 해적판이 나와서 많은 학생들을 사로잡았었는데, 이들은 모두 양질의 퀄리티로 출간되었고 대표적인 작품이 '시티헌터'와 '크라잉 프리맨'이다. 성인만화이긴 하지만 포르노 만화는 아니고 간간히 성인 장면이 들어가는 액션 만화들이었는데, 그런 부분은 그림을 지워서 넘어가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그림의 완성도가 훌륭했고, 이야기는 재밌었다.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는데 나중에 '시티헌터'는 정식 발매가 되었지만 '크라잉 프리맨'은 그대로 묻혀버려서 안타까웠다. 일본색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시티헌터'와 '크라잉 프리맨'은 모두 홍콩에서 영화화되었었는데, 안타깝게도 만화에서 보여주는 멋진 주인공이 영화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 생각만큼 히트하지 못했었다. 시티헌터에서의 그 멋진 주인공이 성룡이라니, 크라잉 프리맨의 주인공이 허관걸이라니, 감정이입이 될 수가 없지 않았을까? 두 영화 모두 봤지만 실망만 남았었다.

'크라잉 프리맨'은 인기가 있을만한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만화다. 훌륭한 그림, 완벽한 주인공, 대단한 조력자, 독자적인 세력, 강한 적을 무너뜨리는 강력함, 그리고 주인공에 반하는 여자들 등 재밌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과 비슷한 유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절대강자가 등장하는 무협지의 배경을 현대로 옮겼다고 할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주인공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야기이다.




'루안살성'은 1990년에  '크라잉 프리맨'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아쉽게도 주인공과 설정은 빌려왔지만, 만화의 에피소드를 그대로 옮겨온 것은 아니다.  그것이 더 좋은 결과로 이루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영화의 시나리오가 만화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다. 만화는 만화의 느낌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 주인공이 실제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의 실망감이 이야기를 재밌게 보는 데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만화 속 에피소드를 그대로 가져오지 않은 것은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화 원작과 계속 비교된다면 만화를 앞서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 예로 96년에 나온 '크라잉 프리맨'이 있다. 마크 다마스코스가 주연한  헐리우드 영화로 만화 '크라잉 프리맨'의 일부를 그대로 옮겼다. 하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설정도 바꿨다. 원작 만화에서 프리맨은 일본의 유명한 도예가였다가 청부살인을 목격하고 기억이 지워진 채 백팔룡의 킬러로 길러지는데, 사람을 죽인 후에 반드시 눈물을 흘리는 캐릭터이다. 연인 역시 주인공의 살인을 목격한 후에 프리맨에 의해 위기를 벗어나 사랑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루안살성'에서는 두 주인공이 러시아에서 고아로 자라서 어린 시절부터 정든 연인으로 설정되어 원작과 차이를 둔다.




'루안살성'은 상당히 재밌었던 영화였다. 어느 정도 판타지라고 느껴지는 액션도 볼만했다. 당시 날아다니는 과장된 액션이 보이는 영화도 많았지만, '루안살성'은 그것이 어색하지 않게 어울렸다. 몇몇 장면은 만화 속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실망했으면서도 재밌게 봤다. 그래서 팜플렛도 망설임 없이 구매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 당시의 홍콩영화스러운 면이 많았다. 만약 유치함을 제거하고 만화처럼 R등급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인 허관걸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당시에는 꽤 인기 있는 홍콩의 스타였다. 코믹 액션 배우로 '소오강호'와 '최가박당' 시리즈'가 유명한데, 엄청난 히트작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국내에 수입이 잘 안돼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허관걸이 주연이라서인지 '루안살성'에서의 프리맨은 진지함으로 일관되지 않고 코믹함과 진중함을 오간다. 즉, 심각했다가 웃겼다가 한다. 그 점이 '크라잉 프리맨'의 이미지를 망치게 되었을 수 있다.

여주인공은 당시 '폴리스 스토리 1,2', '프로젝트 A2', '열혈남아', '양말을 벗지 않는 여인', '아비정전' 등으로 톱스타였던 장만옥인데, 장만옥이 출연했지만 '루안살성'은 프리맨 중심의 영화라서 활약이 크진 않았다는 기억이다. 장만옥이 등장하는 부분은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루안살성'은 그리 많은 부분이 기억나는 영화는 아니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맨손 액션과 총격 장면은 상당히 괜찮았던 것으로 생각되는 영화다. 아마도 다시 본다면 엄청 유치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기억해보는 것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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