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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08. 2018

인생은 생각보다 쉽게 바꿀 수 있다

제때 퇴근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팀원으로 산다는 것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머그컵에 차 거름망을 올린다. 그 위에 조금 많다 싶게 찻잎을 붓는다. 물이 끓으면 잠깐 식혔다 차를 우려낸다. 빨갛게 우러난 차를 얼음 가득 담은 컵에 옮겨 담는다. 짠! 맛있고 살 안 찌는 아이스티 완성!


#일상스타그램 #차한잔 #여유 #행복 #♥


  저녁에 차를 마시는 건 여유가 만든 새 습관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여덟 시. 포장 음식이나마 집에서 밥을 챙기는 게 익숙해졌다.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침대에서 뒹굴대도 하루가 끝나지 않는다. 우와. 책도 잠깐 보고, 웹툰을 정독하고, 잉여롭게 인터넷을 뒤적이면 그제야 새벽 한 시. 슬몃 눈이 감긴다. 이젠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여유를 욕심낼 이유가 없다. 내일도 오늘처럼 제시간에 퇴근할 거니까.


  일상은 생각보다 쉽게 바뀌는 거였다.

  

  우리 회사는 스무 명 규모의 초기 스타트업이다. 탄탄한 기술이 있고, 따뜻한 팀원이 있고, 칼같이 지켜지는 내규가 있다. 유연근무제 덕에 오후 5시쯤 되면 일찍 출근한 팀원부터 하나둘 사라지는데 아무도 퇴근할 때 눈치를 주고받지 않는다. 일곱 시면 남은 인원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나마도 절반은 C레벨들이다. 그렇다. 전설 속 존재인 줄 알았던 '칼퇴하는 스타트업'이 우리 회사다.


  매일 제시간에 퇴근하기. 별 것 아니지만 별로 지켜지지 않던 이 하나가 자리잡아 내 일상이 바뀌었다. 출퇴근 시간이 확실해지니 이젠 하루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퇴근 직전 날아온 일 때문에 기껏 잡아둔 일정을 미루지 않아도 된다. 약속 때문에 눈치 보며 일찍 퇴근한 날 집에 돌아와 잔업을 할 필요가 없다. 매번 회사 일에 우선순위가 뒤쳐졌던 나를 위한 시간도 넉넉하게 보낼 수 있다. 퇴근하고 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을 살피고,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이젠 운 좋은 날의 사치가 아니다.


  일상이 바뀌니 인생이 바뀐다.
회사 하나 바꿨을 뿐인데!


  몇 달 전까지 나는 야근이 일상인 회사의 직원이었다. 해야 할 일이 말도 안 되게 많은 곳이었다. 정시퇴근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양해를 구하고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나마도 퇴근 후 쏟아지는 사내 메신저와 메일에 칼같이 답하는 게 전제였다. 많은 직원들이 자정이 넘어서야 택시 타고 집 가는 걸 알면서, 병원에서 링거 맞아가며 노트북 켜는 걸 알면서, 윗선에서는 그 고생을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회사에서 일 년을 넘게 있다 보면 저절로 회사에서는 절전 모드가 켜진다. 돈 받는 만큼만 일하지 뭐. 노력해봐야 뭐 해. 그렇게 영혼 없이 버티다 번뜩 '돈을 아무리 받아도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을 때 그곳을 떠났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번 공개구직 때 좋은 스타트업을 많이 만났다. 전 직장이 유난히 엉망인 곳이었다는 걸 제대로 깨달은 시간이었다. 많이 고민하다 지금 우리 회사를 선택했다. 첫 출근 전까지 잠을 설쳤다. 선택에는 후회가 없었다. 다만 전 직장에서 사라진 내 열정이 다시 돌아올는지가 걱정이었다. 막상 출근했더니 일하기 싫으면 어떡하지. 절전 모드에서 못 벗어나면 어떡하지. 직장생활이 나랑 안 맞는 거면 어떡하지.


  기우였다. 좋은 회사에 다니니 나도 자연스레 좋은 팀원이 된다. 저녁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준 회사를 위해 업무 시간은 오롯이 회사에 집중한다. 집중해서 한 일을 팀원들에게 칭찬받으니 더 잘할 욕심이 생긴다. 다행이다. 자랑할 것 많은 회사에서 신나게 회사 이야기를 하는 게 내 일이라 행복하다. 회사가 계속 건강하게 성장하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이 그 성장에 한몫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제야 나는 회사 직원을 넘어 스타트업 팀원이 되었다.


  회사 한번 바꿨을 뿐인데 일상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 좋은 쪽으로. 무엇보다 좋은 건 "사람 사는 게 어디 크게 다르겠어" 하며 인생을 바꾸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던 내 무력증이 사라졌다는 거다. 생각보다 인생은 쉽게 바뀐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내 인생을 더 좋은 쪽으로 바꿔나가고 싶다. 지금 같아서야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희망이 생긴다. 좋아. 당장은 세상 편하게 살다 보니 부쩍 늘어난 몸무게를 원상 복귀시키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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