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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20. 2019

덧붙은 한마디가 고마웠던 까닭은

이 글은 저온화상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2

  어제저녁, 2호선 변두리 한 동네에서 입이 댓 발은 나와 절뚝절뚝 걸어가는 사람을 보았는가. 혹시 그의 손에 약봉투와 메디폼 한 꾸러미가 들려 있진 않던가. 아, 그 사람! 생각이 날 듯싶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날 알아보고 이름을 불렀다면 미안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지만 자백컨대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저 슬픈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도망치던 따름이다.




  다리에 2도 화상을 입고 매일같이 피부과에 출석도장을 찍은 게 2주째다. 화상은 초기에 제대로 치료받아야 경과가 좋다는 의사선생님 당부를 찰떡같이 지키던 차였다. 병원 침대에 엎드려 종아리를 내놓는 것도 이제 익숙해졌고. 그런데 오늘은 선생님 표정이 영 좋질 않았다. 매일 '잘 낫고 있어요', '경과는 좋습니다' 하시던 분이 무거운 목소리로 새로운 말을 꺼내신다.


  "상처가 예상보다 더 깊나 봐요. 흉이 좀 남을 것 같네요."

  "아... 네."

  그래, 종아리에 손바닥만 한 화상을 입었는데 멀쩡하게 낫는 게 기적이지.


  "생각보다 빨리 낫질 않네요. 혹시 원래 다치면 잘 안 낫는 체질인가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하기야 이렇게 다친 게 처음이라 체질을 모른 걸 수도 있겠다.


  "이번 주에도 병원 자주 나오세요. 이틀에 한 번씩 오시면 됩니다."

  "앗, 네..."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는 게 맞는구나. 토요일까지만 해도 아프지 않던 소독이었는데 오늘은 비명이 새어 나올 뻔했다.


  "파이팅. 힘을 냅시다."

  그리고 덧붙은 이 말은 예상에 없는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를 맞바꾸고 병원을 나섰다. 정상이 아닌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길, 처방전을 약으로 바꿔오니 하루치 기력을 다 써버린 듯했다. 애써 덤덤한 척했지만 상처가 낫질 않는다니 마음이 쓰였다. 종아리에 남을 자국을 생각하면 속도 쓰렸다. 소독을 마친 상처가 따끔거릴 때마다 입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눈물이 핑 고였다. 참지 말고 울어버릴까. 그런데 희한하게 그 '파이팅.'이 생각나는 거다. 내가 들어본 파이팅 중 가장 진지하고 묵직한 것이었다.


  걸어서 15분 걸리는 이 병원을 벌써 여섯 번 왔다 간다. 얼굴이 낯익은 이 의사선생님은 진료 중엔 필요한 말만 진지하게 하시다가 치료가 끝날 때쯤 꼭 한마디를 덧붙이신다.


  "상처가 심하긴 한데, 경과는 좋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곧 여름인데 얼른 나아야겠다 그죠. 최선을 다해 볼게요"

  "걱정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나아가고 있어요."


  하지 않아도 그만인 말들이다. 환자들이 열댓 명씩 대기 중인 병원의 유일한 의사라 시간도 여유도 넉넉지 않을 거다. 하지만 선생님은 매번 힘나는 말을 한마디씩 덧붙이신다. 내 상처를 아는 사람만 건넬 수 있는 위로며 안정이다. 나같이 겁도 걱정도 많은 환자는 그 한마디에 조금 마음을 놓는다.


  방금까지 나오려던 눈물을 훌쩍, 하고 삼켜버린 힘은 그 말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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