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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26. 2019

나를 지키던 건 귀찮음이었다

이 글은 저온화상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3

  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아니. 저 문장은 많이 미화되었다.

내 인생 최고 몸무게 받고, 3kg 더!




  저온화상 때문에 종아리가 아작난 지 3주째. 여태 몸을 못 쓰고 있다. 운동은커녕 땀이 나는 모든 행동은 일절 금지다.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온몸이 근질거리는 판에 운동이 무슨 대수인가 싶지만 아무튼. 사고 전까지 하루 9천 보 걷던 걸음을 5천 보로 줄였다. 1주일에 두 번 갔던 필라테스도 정지상태다. 이렇게 격렬하게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최근 3년 들어 처음이다.


출처 불명의 냥냥이가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1주일에 2, 3일씩 몸을 움직여온 게 3년째다. 절대 결코 좋아서 해온 운동이 아니다. 3개월치 6개월치 와장창 결제해 버리고 돈 아까워서 꾸역꾸역 뭐라도 다닌 게 3년째라는 거다. 헬스는 나 혼자 꾸준히 할 자신이 없어서 고른 게 요가랑 필라테스다. 정말 너무 귀찮고 싫었지만 시간 맞춰 갔다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더니 열심히 하는 회원님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운동의 목적도 별거 없었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삼시세끼에 간식이며 야식까지 챙겨 먹어야 하루 잘 보냈구나 뿌듯해하는 게 난데. 어떻게든 몸을 써야 건강하게 살 것 같아 귀찮은 운동이지만 꾸준히 해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3년 동안 체중이 유지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사실 그마저도 운동은 페이크고 쉽게 살이 찌지 않는 내 체질 덕택이겠거니 했는데... 체질은 무슨. 운동 끊으니까 먹은 거 다 내 살 되더라.


  꼬박꼬박 운동하던 귀찮던 일상에서 벗어나자 많은 것들이 새로 보였다. 독감 한 번 걸려본 적 없던 건강한 나는 의사선생님이 일 년에 두세 명 본다는 상처 안 낫는 사람이었다. 웬만하면 체형이 변하지 않던 날씬한 나는 운동 안 하면 먹은 게 죄다 살로 남는 사람이었다. 조금 통통한 팔다리도 매력이고 개성이라던 당당한 나는 2인치 늘어난 허리둘레에 오열하는 마음 약한 사람이었다.


  나는 생각만큼 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운 좋은 사람이라는 환상을 지켜주던 건 그 귀찮던 일상이었다.


  습관이 사람을 바꾼다는 거창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내게 운동은 한순간도 습관이었던 적 없다. 비싼 돈 냈으니 귀찮아도 최선을 다하는 몸부림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몸부림이 내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온 걸 이제야 알았다.


  소중한 것들은 꼭 잃고 난 다음 후회하게 된다. 팔다리에 근육 대신 셀룰라이트가, 복근의 무덤에 알이 꽉 찬 나주배가 자리 잡은 지금에야 나는 땅을 친다. 낫기만 해 봐라. 필라테스 일주일에 세 번씩 갈 거다. 주말엔 요가 원데이 클래스 지역별로 순회 방문할 거다. 앞뒤로 박수 치고 가로수에 배 치며 하루 만 걸음씩 꽉꽉 채워 걸어다닐 거다. 더 귀찮게 살면서 몸도 마음도 가볍게 만들 거다.




  이틀 만에 간 병원, 의사선생님이 오랜만에 좋은 소식을 전하셨다.


  "매번 좋은 이야기를 못 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야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아 정말요?! 그럼 이제 다시 듀오덤 붙이고 샤워할 수 있나요?"

  "아뇨. 거즈 붙인 곳 물 닿으면 안됩니다. 약도 좀 더 먹고. 수요일에 봅시다."


  이놈의 다리. 낫기만 해 봐 아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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