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3도 저온화상 입고 2달 걸려 나은 환자의 수기입니다 #5
2019년 4월 3일 오전 11시 20분.
나는 순수한 공포를 보았다.
동네 피부과에서 3주를 끌다 포기한 종아리 화상. 화상전문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첫 진료를 받은 게 4월 2일 저녁이다. 처음 만난 의사선생님은 내 상처가 3도 화상이라며 수술을 두 번 받아야 한다고 했다. 첫 번째 수술은 죽은 피부를 긁어내서 새살이 돋게 하는 가피제거술, 두 번째 수술은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하고 흉터를 적게 만드는 피부이식술. 첫 번째 수술이 끝나고 2주 후쯤 받아야 하는 두 번째 수술은 이박삼일 입원이 필요하니 나중에 날짜를 잡으면 되고 일단 첫 수술부터 서둘러 잡자, 내일 오전은 어떠냐는 선생님의 연이은 말씀에 무서운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왔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다음날 오전 가장 빠른 시간에 수술 예약을 잡았다. 이젠 정말 효과 있는 치료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의가 수술 공포를 이겨낸 것이다.
그러고 집에 가서 세네 시간 동안 '가피제거술', '피부이식술'만 엄청나게 검색했다. 잠들어서는 수술하러 병원을 찾아다니는데 일이 꼬이는 악몽을 꿨다.
다음날 최측근과 함께 오전 반차를 내고 집을 나섰다. 다친 데가 다리라 택시를 탈 만도 했지만 병원 코앞에서 정차하는 버스가 있길래 그냥 그걸 탔다. 무지 아프겠지? 중간에 마취 깨면 어쩌지? 온갖 상상에 부들부들 떨며 한 시간 걸려 도착한 병원, 모든 것은 대기 없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부터는 오롯이 나 혼자였다. 수술이라니. 마취주사가 그렇게 아프다던데. 죽은 살은 칼로 긁어내는 걸까. 수술실은 2층이었다. 나보다 더 넓게 붕대를 두른 사람들로 바쁜 엘리베이터를 두고 슬렁슬렁 걸어갔다. 아무쪼록 천천히 도착하려 했는데 수술실은 너무 가까웠다.
수술실은 깨끗했지만 도축장이 떠오르게 살풍경했다.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께 이끌려 신발을 갈아 신고 머리에 캡을 썼다. 환자는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뚜-뚜-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수술이라니. 수술대라니. 엎드리라니. 간호사 선생님 두 명이 화상 드레싱을 뗀다.
“마취주사 맞기 전에 마취크림 같은 걸 바를 순 없나요?!”
“그런 건 따로 없는데요.”
"지금 마취주사 놓는 건가요?!?!"
"아뇨 그건 선생님 오면 하시고 지금은 소독하는 거예요. 차갑습니다."
소독이 끝난 상처 위엔 흰 거즈가 덮인다. 왜 그때 영화나 드라마 속 영안실에서 덮던 흰 천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죽을 확률은 0에 수렴하는 수술이다. 화상전문병원까지 왔는데 여기서 고치지 못할 상처도 아닐 것이고. 하지만 사실을 암만 곱씹는다고 공포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곧 의사선생님이 들어왔고 간호사 한 분이 거즈를 치우려다 내 상처 위를 정통으로 꾹 누르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실수를 한 걸까.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엄청 아팠으니 이 분은 이번 글 한정으로 선생님이라고 안 부를 거다. 아무튼 엄청난 괴성과 함께 본격적인 수술 그 장대한 몇십 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간호사분의 간단한 사과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큼직한 주사기를 들어보이는 의사선생님. 사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 말하고 싶지만 그 난리통은 너무 생생해서 잊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아까 신발이며 머리캡을 챙겨 주신 간호사 선생님은 우리 엄마뻘 되는 분이셨는데 내 표정에서 이미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걸 읽어내셨던 것 같다. 어느새 곁에 와주신 그분은 내가
“그거 마취주사인가요? 주사 몇 대 맞나요?!”
하며 뒤돌아보려는 걸 엄청난 완력으로 저지하고,
“보지 마세요! 주사 딱 한 대에요!”
외치시곤 자신의 팔 하나를 내게 넘기셨다.
“으아아악!”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뼈를 내주고 살을 수술하는 그 간호사 선생님의 전략이 먹혀들어 나는 그분의 오른팔인지 왼팔인지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너무 죄송한데 너무 무서워요”하면서. 마취주사는 짧은 한 방이 아니라 길고 묵직했다. 내 인생에 여태 없던 아픔이다. 이제야 냉정하게 말하자면 죽을 만큼 아픈 건 아니었는데 한번 터져나온 눈물 콧물은 멈추질 않았다. 나는 그냥 아픈 게 너무 무섭다. 어느 정도냐면,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을 때 병원에서 피 뽑는 걸 무서워하다가 심박이 엄청나게 빨라져서 고혈압 주의 판정을 받은 적 있을 정도다. 아무튼.
“주사 거의 다 들어갔어요, 잘 참으시는구만.”
“흑…”
주사를 모두 맞자마자 수술이 시작되었다. 마취가 이만치 순식간에 된다고? 싶어 걱정이었는데 수술하는 동안 다리가 덜그럭거리는 느낌만 나고 아픈 감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미 흘려버린 콧물이라 수술 중에도 그저 훌쩍일 수밖에 없었는데, 아까 팔을 빌려준 간호사 선생님이 잠시 나갔다 돌아와서는 거즈를 한 뭉텅이 전해주셨다. 감사합니다 흑흑… 눈물을 닦고 콧물도 몰래 풀었더니 의사 선생님도
“아직도 훌쩍훌쩍 하세요?”
“...”
“마음이 진정이 덜 됐나 봐요.”
“...죄송합니다…”
“아녜요. 무서울 수 있죠. 괜찮아요. 다음에 2차 수술 땐 수면마취로 해야겠어요. 환자분이 너무 힘들어하셔서.”
하시고는, 이틀 후 저녁에 오라신다.
수술을 마무리하는 선생님께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2차 수술은 최대한 안 하면 안 되냐고 징징댔고 선생님은 상처가 깊긴 한데 앞으로 경과를 지켜보며 결정하자고 하셨다. 큰 수술이 아니어서 수술실을 멀쩡히 내 발로 걸어나간 나는 삼보일배하는 마음으로 수술실의 모든 분들, 특히 자기 팔이며 거즈까지 흔쾌히 내어주신 그 간호사 선생님께 사과 및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너무 감사하고 너무 죄송해요. 이 나이에 수술이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없어가지고…”
“괜찮아요. 누구나 여기 오면 무섭죠. 그럴 수 있어요. 그런 걸로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수고 많았어요.”
이게 벌써 일주일 전이라니 믿기질 않는다. 내일은 수술 끝나고 두 번째로 병원 가는 날, 상처 부위가 까맣게 되었는데 이게 대체 어떤 징조인가 싶어 몇 시간을 찾아보다 방금 인터넷 창을 껐다. 지난번 진료 땐 드레싱 재료를 챙겨주는 선생님들께 “혹시 주사도 맞아야 하나요?”라며 소소한 웃음을 드리고 왔는데, 이번에도 별 아픈 것 없이 진료가 끝났으면 좋겠다. 상처도 잘 회복되고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아니, 수술 안 하고 안 아프게 잘 낫는 것까지만 바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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