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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30. 2019

덤벼라 세상아 나에겐 김치볶음밥이 있다

내가 운동을 견뎌내는 이유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운동 모임' 같은 게 있으면 저 좀 꼭 불러 주세요. 저 할 말 많습니다. 일단 첫마디는 이걸로.

"운동은 정말 해도 해도 좋아지질 않아요! 하다 보면 재밌어진다는 사람들 제일 얄밉지 않나요?"

  작년엔 요가 올해는 필라테스, 중간에 다리를 다쳐 두세 달 쉰 거 빼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꾸준히 다니고 있는데요. 좋아서 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나마 헬스 등등 다른 운동보단 덜 싫으니까 꾸역꾸역 나가는 거죠. 안 하면 몸이 굳는 게 느껴져서 어쩔 수 없이 하고는 있다만 저는 정말 세상에서 운동이 제일 싫습니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운싫운모' 횐님덜!

  끄덕끄덕해 줄 회원님들 표정을 상상하면 기분이 좀 나아집니다만 벌써 일곱 시. 퇴근하고 운동 갈 시간입니다. 운동 가는 날은 퇴근이 순수하게 반갑지가 않습니다. 가끔 정말 싫은 날엔 '오늘 혹시 야근이 생기지 않을까' 이상한 기대를 하게 되는데 어쩜 우리 회사는 이럴 때만 워라밸이 끝장나는지. 지하철 한 번 버스 한 번 갈아타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쩔 수 없지, 오늘도 운동 끝나면 김치볶음밥을 먹어야겠어요.

  얼마 전에 진짜 맛있는 김치볶음밥 맛집을 찾아냈거든요. 주말 점심 대충 때우려고 주문한 거였는데 빠른 배달에 한 번, 엄청난 맛에 두 번,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양에 세 번 울었습니다. 거기서 만든 차돌김치볶음밥은 중국집 볶음밥처럼 기름지게 잘 볶아내 고급진 맛이 납니다. 스팸김치볶음밥은 밥 반 스팸 반 집에서 재료 안 아끼고 만드는 맛 그대로라 좋고요. 차돌김치볶음밥 팔천 원, 스팸김치볶음밥 칠천 원, 계란후라이 추가는 공짜. 그렇게 시키면 배달비도 안 내는데 오늘 반 내일 반 배 터지게 먹고 이틀이 행복합니다. 요 한 주 매일 저녁 김치볶음밥을 먹었어요. 질릴 만도 한데 따끈하게 한 입 퍼먹으면 참... 여전히 맛있더라고요.

  어찌어찌 학원에 도착하면 옷 갈아입고 출석 부르는 내내 그 김치볶음밥을 생각합니다. 운동이라는 고통을 이겨낼 저만의 진통제랄까요. 50분 운동, 이것만 끝나면 나는 오늘 자유다. 자유랑 따끈따끈 김치볶음밥이 나를 기다린다. 김치볶음밥. 김볶밥. 그 아름다운 이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갖은 기구에 눕거나 서거나 엎드려서 다리나 팔을 접고 펴는 건 현대판 고문인가 싶지만 김볶밥 빠른 배달을 생각하며 현대 사회의 미덕에 감사합니다. 열 번만 하면 끝난다더니 다섯 번을 덧붙이는 선생님은 항상 나를 속이지만 추가만 하면 공짜로 덧붙는 김볶밥 속 계란후라이 그 반숙된 맛엔 거짓이 없죠.

  그러다 제일 반가운 선생님의 한마디가 들립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집에 가는 길, 김볶밥 세트를 주문해놓고 힘차게 행진 시작입니다. 하루치 고통이 모두 끝났습니다. 매번 질리지도 않고 놀라는 뼈와 근육들이 삐걱대지만 괜찮습니다. 내일 출근 전까지 행복만 남은 이 순간, 이 연사 마음속으로 힘차게 외칩니다. 세상아 덤벼라, 나에겐 김치볶음밥이 있다!



*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 13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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