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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9. 2020

행복한 세상이 뭐 어때서

좋아하는 시인이 산문집을 냈다. 아껴 읽는 사흘 내내 감탄했다. 좋다. 좋다는 말에 덧붙일 게 없는 좋은 책이다. 좋은 사람이 쓴 온기 담은 글이 모였는데, 시인의 은사가 나오는 꼭지는 개중에서도 좀 더 따뜻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일기장 검사를 하시더니, 저를 따로 불렀어요. 그러고는 노끈으로 묶는 검정 파일에 갱지를 끼워주셨어요. 앞으로는 동시나 예쁜 글 같은 거를 거기에 쓰라고 하시면서요. 표지에는 흰 포스터물감으로 ‘꽃수레-능교초등학교 6학년 박성우-‘라고 써주셨는데요. 제가 크면 시나 동화 같은 걸 쓰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는 말씀도 해주셨어요. 정말이지 너무 좋아서 잠도 안 왔다니까요.’ *


꼬마 시인을 알아보다니 눈이 어지간히 밝은 분이셨나 보다. 선생님의 격려가 시인의 문장을 데웠겠지. 잔뜩 설레서 갱지를 차곡차곡 채웠을 시인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밝아진다.
음, 아니,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동화라. 나도 20년쯤 전에 들은 말이 있다.



초등학생 때 시에서 여는 백일장에 나간 적 있다. 글의 주제가 뭐였는지, 어떤 글을 썼는지는 하나도 기억 안 난다. 다만 한 마디, 지금은 이름은커녕 성별도 까무룩한 담임 선생님과 나눈 대화만 생생한데, 그는 내가 쓴 글을 보고는


“너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많이 보니?”
“네? 네.”
“어쩐지. 글이 그런 느낌이다.”


했다. 원체 퉁명스런 분이었지만 그날따라 말에 큰 가시가 있더라. 뭐지? 어리둥절 넘겼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짐작 가는 바가 생겼다.


그 선생님 우리 학교를 안 좋아했었다. 수업 시간이면 ‘도시에 있는 애들은 이런 거 진작 끝냈다’며 자기 자식이랑 조카들 자랑을 꺼내곤 했지. 언젠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소개하면서는 ‘근무지를 선택하기 어렵다, 산골에도 발령이 나면 가야 된다’ 했었고. 산골에 있는 우리 학교 무시하나? 그게 싫어서 일부러 악착같이 뭐든 잘해내려 했다. 도시에 있는 애들보다 훨씬 더. 그게 꼴사나웠는지 선생님은 나를 싫어했다. 뻔한 이야기에 억지 감동을 꾹꾹 눌러 담은 내 글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고. 의기양양 그것도 작품이라고 써낸 학생에게 대놓고 니 글 별로라고 말할 순 없었을 테니 그렇게 비꼬았구나. 참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5분짜리 짧은 애니메이션, 보고 나면 코끝이 찡해지던 TV동화 행복한 세상 시리즈. 동전 대신 씨앗을 건네도 사탕을 내어주는 슈퍼 주인이 나왔고, 저금통 갈라 아픈 동생 약을 살랬더니 수술을 해 주는 의사가 나왔다. 뭘 그렇게 다 공짜로 준담! 주인공들 앞에 찾아온 행복이 너무 좋아 책으로도 몇 번을 읽었다. 내 시선 닿는 곳에 꽂아둔 TV동화 행복한 세상 시리즈가 다섯 권, 엄마 눈치 보며 슬쩍 졸라 산 몇 안 되는 보물들이었다.


구질구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돈 벌러 나간 사이 빚쟁이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동생과 침대 밑에 숨어 돌아가는 구둣발 소리를 기다리면서 가난은 행복과 가장 먼 데 있구나 배웠다. 그런데 TV동화 행복한 세상에선 제일 가난한 사람까지도 금세 행복해지더라. 그게 좋았다. 그땐 내가 쓰는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그냥 그렇게 행복하길 바랐다. 이야기의 개연성, 비극이 주는 감동,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주인공의 행복을 뺏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은 모를 거다. 내가 왜 산골 학교로 전학 오게 되었는지. 왜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좋아했는지. 왜 그런 글밖에 쓰지 못했는지.


행복한 세상만 담은 내 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재능이 없구나 단념하고. 그래도 아쉬워 이것저것 쓰고. 역시 글 쓰는 게 제일 재밌고. 결국 대학은 국어 전공으로 갔다. 졸업하고 안정적인 데 취업하면 좋겠다는 부모님 눈치에 국문학과는 못 가고 국어교육과를 갔지만 그래도 좋았다. 글 쓰는 선생님으로 살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잘못 알고 가진 바람이었다.


선생님은 안정적인 삶만 기대하는 사람이 가지면 안 되는 직업이다. 대충 일해도 월급 나오고, 잘릴 일 없으니 마음 편하고, 출산휴가 편하게 다녀올 수 있고? 고작 그런 이유로 선생님이 되면 안 된다. 대학교 4년 다니면서 그걸 배웠다. 사람마다 평생을 기억할 어린 시절, 뭐라도 따뜻한 말과 추억을 남기려 노력하는 사람이 선생님이어야 한다. 칭찬 가득한 말로 어린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이 선생님이어야 한다. 그런 사명감으로 대학에 온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오래 부끄러웠다.


어찌저찌 회사에서 글 쓰는 일을 하며 돈을 버니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 글주변을 맴맴 돌다 매주 한 편씩 산문을 써서 보내는 뉴스레터도 시작했다. 이제 좀 내 글에 뻔뻔해지나 싶을 때쯤 뉴스레터 만들기 강의도 맡게 되었다. 몇 년 전 교생실습이 '선생님’으로 불리는 마지막 날일 줄 알았는데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지. 10명 정원, 6번의 수업 중 5번까지 함께한 서너 분은 정말 멋진 글을 완성했다. 나는 열심히 빨간 줄 치고 피드백을 달아댔다. 지금도 좋지만 이 문장은 이렇게, 이 문단은 저렇게 하면 더 좋겠어요. 강의 시간에 뭐라도 더 얻어가시라는 마음이었는데 어쩌나. 이 재밌는 글들 계속 읽고 싶은데 칭찬을 더 많이 할 걸 그랬다.


다음 주 마지막 수업엔 이런 이야기를 해야지. 계속 쓰시면 글은 점점 더 좋아질 거예요. 아무쪼록 지금처럼 계속 쓰시고, 쓰시면서 더 행복해지시길 바라겠습니다. 쑥스러워 입 밖으로 내진 못하더라도 밝은 마음 가득 담아 수업을 준비해야겠다. 잠깐이라도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 박성우, <마음 곁에 두는 마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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