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놀다 자고 간 친구를 역에 바래다주고 동네 산보를 했습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추리닝 긴 바지가 덥다 싶게 햇빛이 쨍한 날이었습니다. 높은 나무가 그늘을 내려준 길을 걸으니 마스크 너머로 풀냄새가 났습니다. 한걸음만 더 내딛으면 여름입니다.
'조금만 걸어도 등짝이 살포시 젖어드는 계절이다. 라고 하면 어떨까, 등짝은 너무 거친 단어인가? 아니 그 정도는 써야 재밌지.'
지금 이 기분을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까, 무심결에 문장을 떠올려 다듬다가 놀랐습니다. 다시 왔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집에만 박혀 있어서, 재밌는 일이 없어서, 다양한 핑계로. 언젠가부터 글 쓸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방황하던 게 엊그제 일이었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이 4월의 땀방울처럼 불현듯 주인을 찾아왔네요. 어떤 계기도 없이 그냥 갑자기.
마음은 어느 순간 잃어버리면 되찾기 어려운 것인 줄 알았습니다. 마냥 그런 건 아니었나 봐요. 어제는 좋은 제목 한 줄이 떠오르더라고요. 아니, 아무도 이 제목으로 책을 안 냈네? 그럼 내가 써먹어야지! 하면서 상상의 나래도 쭉쭉 펼쳐 보고.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 굉장히 오랜만이라 기분 좋게 숨을 들이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