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썼다는 이유로 살아남을 글
“재밌는 거 보여드릴 게 있는데, 오늘 출근하시나요?” 회사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손짓하는 회사 동료의 모니터에는 ‘AI 카피라이터’ 창이 떠 있었다. “이거 제법 괜찮더라고요! 제품을 적으면 거기에 맞는 카피를 알아서 써 줘요.”
정말이다. ‘비타민’을 써 넣으니 ‘건강을 챙기는 고함량 비타민! 하루치 활기를 충전해드려요~’ 라는 카피가 튀어나왔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새로운 카피가 나오는데 인간이 쓴 것과 다르지 않았다. 괜찮은 이미지를 붙이면 바로 인스타그램 광고로 써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기술이 벌써 이 정도까지 올라왔다고? 내 밥그릇은 무사한가? 내심 놀랐지만 금방 잊었다. 한 줄 카피야 쉽지, 내가 쓰는 모든 글을 이걸로 완성하진 못하니까. 한 달 전쯤의 일이다.
얼마 전부터 AI 그림이 난리다. 어떤 친절한 예고도 없이 인터넷을 점령했다. 원하는 키워드를 입력하거나 간단한 가이드 콘티를 집어넣는 것만으로 그럴싸한 그림이 나온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업로드하면 그 캐릭터를 다양한 구도로 그려주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30시간이 걸린 자기 그림과 30초 걸린 AI 그림을 나란히 업로드하기도 했다.
뛰어난 작가들의 그림보다야 한참 떨어지지만, 웬만한 아마추어보다 훨씬 잘 그린다. 가끔 인체가 뒤틀리는 등 알 수 없는 결과물을 뽑아내지만 새로고침하면 그만이다. 누군가는 웹소설 표지 등의 일러스트를 이걸로 대체할 수 있겠다며 좋아하고, 누군가는 돈 받는 커미션 그림을 AI로 만드는 악질이 있을 거라며 주의를 전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접어야겠다는 여러 감상은 웃자고 하는 농담만이 아닌 것 같다.
결과물이 신기해서 Novel AI를 기웃거리는데, 이미지 생성 기능은 최근에 추가된 듯하고 원래는 이름대로 소설을 쓰는 AI였나 보다. 사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면 AI가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다음 문장을 써주는 식의 텍스트 게임이 가능하다. 대체로 배경은 용이나 마법이 나오는 판타지 같았다. 내가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푹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내가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당황했을까? 내 밥그릇이 무사할까 싶어 불쾌했을까?
당장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모조리 뺏아가진 않을 거다. 개개인을 대체할 만한 AI를 만드는 게 우리 연봉보다 비쌀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상상해본다. 긴 글 하나 쓰면 뻗어버리는 내가 하루 종일 쓸 글을 30초만에 완성하는 AI. 그가 나 대신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맞춤법을 확인하고, 회사 블로그에 글을 쓰는 모습을. 동료들의 이야기에 “이런 멋진 프로젝트는 블로그 콘텐츠로 올려야 해요!” 라며 냅다 미팅을 잡아버리는 모습을. 모습이랄 게 없겠지만 아무튼.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잘 쓸 것 같다. 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으면 작은 차이조차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AI가 에세이를 쓴다면, 매주 수요일마다 메일을 보내온다면 받아볼 사람은 적을 것 같다.
감히 확신한다. AI가 제아무리 뛰어난 작가가 되더라도 에세이만큼은 사람이 써야 할 거다. 우린 에세이의 문장을 읽지 않는다. 에세이 너머의 사람을 읽는다. 숨을 쉬어야 살고, 밥을 먹어야 살고, 결국 언젠가는 죽는 사람.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사람이 무언가 하려고 일어나는 모습. 금방 사라질 기쁨을, 오래 남아 헤어나오기 힘든 고통을 애써 남기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응원하는 건, 사람에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기에 사람의 팬이 된다.
계속 에세이를 써야겠다. 언젠가 누군가 알아봐 준다면,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게 느껴져서 좋아요! 팬이에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