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개할 한 줄 문장
오랫동안 품어 온 생각 하나.
‘나를 소개할 짧은 문장을 짓고 싶다.’
어렴풋하게는 책 날개의 작가 소개가 눈에 들어온 때부터다. 삶의 지향점을 한두 줄로 풀어내는 작가들이 멋있어 보였다. 가장 멋있는 건 이름 석 자만 쓰인 황정은 작가의 책 날개였지만, 말이 많은 내게 어울리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았다. 책을 내려면 멋진 소개부터 만들어야겠다 킬킬대다가 책 낼 일이 없어 잊고 살았다.
구체적인 고민을 시작한 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나서부터다. 포트폴리오 첫 장도 책 날개와 다르지 않았다. 뒷장을 살펴보게 하려면 나를 뚜렷이 소개할 문장이 필요했다. 마침내 ‘글 쓰는 마케터, 스타트업의 진심을 전하는 스토리텔러’라고 채워 넣을 때 어찌나 뿌듯하던지. 일하는 나를 소개하는 문장은 이거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소개하는 건 회사 안의 나 뿐이었다.
나를 소개할 짧은 문장에 들어가야 하는 건 내 직업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마음에 오래 둘 이야기는 무엇인지다. 허세 없고 간결하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다정하면 좋겠다, 오래 생각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걸 찾진 못했다. 그랬는데.
하늘이 파란 날이었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가는데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기에 뭔가 싶어 두리번거렸다. 국기원 태권도시범단의 공연이었다. 하얀 도복을 입은 청년들이 구름처럼 둥실 뛰어올랐다. 그들의 날라차기에 송판, 기왓장, 대리석이 와장창 깨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시간 가는 것도 잊은 채 공연을 봤다.
어느새 공연이 끝나고, 내내 진지하던 그들이 박수를 치며 무대를 빙글빙글 돌았다. 멋진 일을 해낸 사람만 지을 수 있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좋은 걸 보다니! 나도 함께 박수를 쳤다. 손이 발개질 정도로 열심히 쳤다. 멋져요, 대단해요, 잘 봤어요, 고마워요, 앞으로도 다치지 말고 멋진 모습 보여주세요, 수많은 마음을 담아 오래 오래 쳤다.
그 박수 속에 문장이 떠올랐다. 크게 박수 치는 사람. 나는 크게 박수 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크고 벅찬 마음을 담아 멋진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따뜻한 마음을 가장 마지막까지 뜨겁게 전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도, 내가 쓰고 싶은 글도 모두 그 박수 속에 있었다.
내가 지은 문장 중에 가장 멋진 걸 자기소개로 쓰게 되었다. 한 문장을 완성한 것뿐인데 한 뼘이나 키가 자란 기분이다. 이 문장을 자주 쓰고 싶어서라도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