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은 사람이 지켜야 할 예의

#3. 우리집, 코로나와 함께한 일주일

by 여름

초등학생 때 엄마 몰래 밤새 하던 RPG 게임이 있었다. 처음에 캐릭터를 만들려면 공격력, 방어력, 지력과 민첩력을 결정지을 주사위를 굴려야 했다. 어릴 때부터 마니아 기질이 있던 나는 좋은 숫자가 나올 때까지 주사위만 한 시간쯤 굴리곤 했다. 캐릭터를 제대로 만들려면 시작부터 운이 좋아야 하는구나, 5초에 1번씩 마우스를 클릭하며 인생의 쓴맛을 미리 보았다. 멍하니 그런 생각도 했다. 사람에게도 이렇게 타고난 능력치라는 게 있을까, 있다면 내가 높은 건 무엇일까. 아무리 봐도 특출난 게 없는데.


그로부터 20년, 고만고만한 내 능력치 사이에서 평균보다 높은 건 병에 걸리지 않을 확률인가 싶었다. 키도 몸무게도 평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것치고는 혈압도 혈당도 정상. 아폴로 눈병이나 독감 같은 유행병도 걸려본 적 없다. 작년엔 코로나 확진자와 점심을 함께 먹었는데도 멀쩡했다. 내가 건강한 덕인지 두 번 챙겨 맞은 백신의 힘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계속 운이 좋을 줄 알았다.


지난주 월요일 아침부터 몸이 으슬으슬했다. 자가검사 키트 결과가 음성이라 잠깐 찾아온 환절기 감기겠거니 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사흘 전 나와 회의를 함께한 분이 코로나 확진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날 자가검사해 보니 뚜렷한 두 줄 양성.


코로나를 먼저 겪은 주변 사람들은 사나흘 정도 고생하니 괜찮아졌다고들 했다. 그러잖아도 무증상자가 많은 병인데 나는 지병도 없으니 금방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래, 걸릴 거면 차라리 지금처럼 증상이 심하지 않은 변이를 걸리는 게 낫지. 덜 아플 때라 정신 못 차리고 느긋한 생각을 했었다. 나는 심하게 앓았다. 병에 걸리지 않을 운이라니, 이상한 자부심을 가졌던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열이 38도까지 올랐다. 열이 내리면 두통이 생겼다. 양쪽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었다. 칼을 삼킨 것처럼 목도 아팠다. 일주일 내내 목소리를 잃었다. 사흘째 되던 날엔 미각과 후각까지 사라졌다. 뭘 먹어도 맛과 향이 사라져 입 속 자극으로만 느껴지는 게 당황스러웠다. 아프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격리 기간이었던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정상생활이 가능해진 건 격리가 끝나고도 사나흘 더 지난 후부터였다.


기력이 돌아오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단치 않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코로나를 묘사한 사람들은 뭘 알고 그런 소릴 했을까. 이건 절대 감기몸살 수준의 고통이 아니었다. 설령 대부분에게 그런 가벼운 병이라 해도 운이 나쁘면 나처럼 한참을 앓을 수 있는 거였다. 여기저기서 별거 아닌 감기로 치부된 탓에 앓아누운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다들 사나흘이면 컨디션 회복해서 재택근무하던데, 혹시 내가 이 기회에 아픈 척하며 땡땡이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니겠지.


이거야말로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회사에 코로나 걸렸던 사람들이 많아 충분히 배려받고 쉴 수 있었다. 운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휴식이었지만, 어딘가에는 나보다 더 아픈데 주위의 아무도 몰라 주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아픈 몸을 일으켜 일을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울적했다.


격리가 끝나고도 일주일이 지난 지금. 다행히 나는 일상을 거의 되찾았다. 간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 평소보다 음식을 짜게 먹는 건 좀 걱정이다. 머리가 굳어 일이 잘되지 않는 것, 조금 무기력해지는 것도 후유증일까 수상하지만 곧 괜찮아질 거라며 스스로 달래고 있다.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쌓였던 수많은 일들을 숭덩숭덩 베어내며 나아가야 할 때다.


한편,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서 슬프다. 운이 좋은 사람이 평생 지켜야 할 예의를 배웠다. 앞으로는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고통을 감히 가벼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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