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 그리고 나의 계절
더워서 눈을 떴다. 초여름 살짝 달아오른 공기는 아침 알람보다 강하다. 에어컨을 켜고 다시 자려다 눈 뜬 김에 집안일을 시작했다. 세탁기 돌리고 설거지 하고, 이 정도면 보람찬 하루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언가 빠뜨린 것처럼 마음이 개운치 않다. 뭐가 더 있었나? 곰곰이 생각하다 머릿속에 번쩍 번개가 쳤다. 지금은 6월, 신비복숭아 철!
복숭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다. 애초에 복숭아 말고 먹는 과일이 몇 없다. 사과나 참외처럼 사각거리는 것, 딸기처럼 조금이라도 신 맛이 나는 것은 손이 가질 않는다. 제철 과일이래서 사 봤자 물러버리기 일쑤다. 그렇게 돈을 버릴 바에야 차곡차곡 모아 여름에 쓰는 게 낫다. 올여름에도 냉장고에 복숭아가 끊이지 않게 채워둘 생각이다. 일단은 한 달을 채 넘기지 않는 신비복숭아 수확철부터 챙겨야 한다.
신비복숭아는 작년에 처음 먹어보았다. 아기 주먹만 한 게 뭐 잘났다고 저리 비싸? 싶었지만 동네 과일가게 사장님이 입이 마르게 추천을 했다. 생김새는 천도복숭아인데 알맹이는 백도라고, 단 거 좋아하면 무조건 먹어 봐야 한다나. 속는 셈치고 사 봤는데 정말로 맛있었다. 내가 먹어 본 복숭아 중에 가장 달콤하고 향긋했다. 심지어 사흘쯤 후숙했더니 천도복숭아처럼 단단하던 것이 사르르 물렁복숭아가 되었다. 이거야말로 딱복파와 물복파를 모두 아우르는 극락의 복숭아다.
신비복숭아의 제철은 찰나에 지나버린다. 원체 6월에 2~3주 반짝 나오는 과일이라고 한다. 사전예약 받는 곳이 있길래 당장 주문했다.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많이 먹어둬야 한다. 이제 슬슬 질린다 싶을 때 하나 더 먹어야 한다. 너무 많이 먹어서 내년까진 못 먹겠다 싶도록 먹어야 한다. 그래야 낙엽 떨어지고 바람 매서운 계절을 견딜 힘이 난다.
요즘 나는 놀기에 제철이다. 놀고 먹고 자고, 좀 더 의미있게 살아야 하나 싶다가도 이 소중한 기회를 저버릴 수 없다. 더 열심히 놀아야 한다. 놀다가 질릴 때 한 번 더 마음 독하게 먹고 즐겨야 한다. 그래야 다시 직장인이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신비복숭아처럼 달콤한, 내 인생의 아주 짧은 제철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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