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페스티벌 5년 차, 직장생활 8년 차의 좋은 자리 찾는 법
1년을 기다린 계절이 시작되었다. 여름이 반짝이는 이유, 바로 음악 페스티벌이다. 최측근과 함께 페스티벌 가는 게 올해로 5년째다. 서울은 물론이고 마음에 드는 라인업이라면 인천, 부산까지 다녀온다. 티켓값이며 차비, 숙박비가 만만치 않지만 돈은 이럴 때 쓰려고 버는 것이다. 실업급여 받는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편한 신발을 신을 것, 눈에 띄는 돗자리를 챙길 것, 물을 많이 가져갈 것. 땡볕에 얼굴을 태우고 진흙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얻은 페스티벌 팁이 많다. 그중에서도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좋은 자리를 고르는 방법이다.
피크닉 존에 앉아 느긋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몸을 일으켜 달려나가게 하는 공연이 있게 마련이다. 스탠딩 존에서 제대로 공연을 즐기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아티스트가 잘 보여야 하고, 쾌적하게 몸을 들썩일 공간이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자리는 당연히 펜스 1열이다. 아티스트의 얼굴에 흐르는 땀까지 보이는 명당인데다 펜스에 팔을 올리며 중간중간 체력을 충전할 수 있다. 문제는 모두가 탐내는 자리이니만큼 경쟁도 치열하다는 거다. 여기서 공연을 보려면 무척 부지런해야 한다. 아티스트 리허설 전부터 자리를 잡아야 하고, 화장실도 참아 가며 그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좋은 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가 펜스 2열인 줄 알았다. 세 번째는 3열, 네 번째는 4열, 그런 식으로. 무대와 가까울수록 좋은 자리인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물론 시야를 확보할 만큼 운수 좋은 날은 많지 않았다. 대개는 키 큰 사람들과 동영상 찍는 휴대폰 뒤에서 ‘이쪽 틈으로 보인다, 아니 다시 안 보이는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느라 바빴다.
하지만 지난 주말 다녀온 페스티벌에서는 앞자리에 서려고 애쓰지 않았다. 봐야 할 공연도 많고 금, 토, 일 3일 연속으로 놀아야 하는 만큼 체력을 아껴야 했다. 무대가 4개나 되는 페스티벌이니까 맨 뒤에서 보다가 빠릿빠릿 이동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 맨 뒷자리가 의외로 명당이었다! 무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데다 팔다리를 흔들 수 있는 공간도 널찍했다. 아티스트들의 얼굴이 면봉만큼 작게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수백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 함께 춤추고 뛰는 모습도 무대만큼이나 장관이었다.
그곳에서 문득 회사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더 많은 인정, 더 높은 연봉을 받으려고 쉼없이 1열 펜스를 향해 나아가던 날들이었다. 밤낮과 주말 구분 없이 일할 때도 있었다. 몸도 마음도 너덜거렸지만, 힘든 게 전부였다면 진작 그만뒀을 거다. 조금씩 무대에 가까워진다는 환상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나보다 일 잘하는 사람, 훨씬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결국 펜스를 차지하는 건 그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본들 나에게 보이는 건 앞사람 뒤통수 뿐이었다.
백수가 되어 맨 뒷자리를 차지한 지금은 그때의 열정이 가물가물하다.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 쉬어가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느긋하게 물 한 모금 마시면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다. 흐르던 땀이 멈추고 쉬었던 목이 돌아오고 있다.
아마 맨 뒷자리에 영원히 머무르진 못할 거다. 빛나는 무대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앞자리를 노려야 한다. 언젠가 회사로 돌아갈 것이고, 이왕 하는 일이니 잘하고 싶어 악착같이 달려들 거다. 하지만 그때도 맨 뒷자리가 의외로 좋다는 걸 잊지 않을 거다.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한여름 더위를 식힐 작은 바람으로 남을 것 같다.
* 첫 문장 ‘1년을 기다린 계절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의 테마송 ‘So Nice’ 가사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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