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늦은 밤 듣는 노래는 특별합니다. 제가 늦게까지 깨어있는 일이 드문 데다 그 늦은 밤에 음악을 듣자고 마음먹는 일도 흔치 않거든요. 거기다 평소에는 군말 없던 제 막귀마저 밤이 깊으면 괜히 까탈스러워져요. 신나는 노래를 들을 기분은 아니면서 조용한 노래를 듣자니 지루하다나.
정말 특별히 좋은 곡을 들어야만 하는
그런 날은 대개 우울한 날입니다.
불금. 많은 사람들에겐 흥겨움으로 불타는 날이었을 텐데 저에게는 불편한 날이었어요. 곧 나이는 한 살 더 먹는데 올해 이룬 건 별 것 없다는 걸 새삼 알아채서입니다. 특히 이번 한 주는 여러 모로 정체기였거든요.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여전히 답보 상태인데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좋은 글을 쓰지 못했어요. 흑흑. 이래서야 내년 연봉도, 내 문장력도 그대로겠지. 흑흑흑. 스스로 노력이 부족해 느끼는 자괴감이라 다른 사람에게 징징댈 수도 없고. 잠이나 자고 나면 나아질까 싶어 침대로 쏙 들어갔지만 이상하게 눈이 감기질 않더라고요. 그래, 오늘이 음악의 날이구나.
콜드플레이는 오래전부터 좋아한 그룹이고 Up&Up은 몽환적인 뮤직비디오가 매력 있지만, 제가 이 곡을 특별하게 꼽는 것은 기타 간주 때문입니다. 첨부한 뮤직비디오 버전에는 없고 6분이 넘는 풀 버전에서 들을 수 있는데, 40초 정도 이어지는 이 부분에는 아무 가사도 없어요. 가사가 없으니 슬픔이나 위로, 혹은 희망이나 행복 같은 단어로 단정 지어 해석할 수도 없고요. 그 부분은 그냥 그렇게 존재합니다. 따뜻함을 담아서. 아무 말 하지 않을 테니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울고 들어온 너에게
- 김용택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위로도 책망도 듣고 싶지 않은 슬픈 날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날, 몸을 동글게 말고 슬픔을 이겨낼 방법을 혼자 궁리합니다. 그리고 혼자 음악을 듣습니다. 억지로 슬픔을 짜내지도, 희망을 이야기하지도 않지만 신기할 만큼 따뜻한 기타 반주를 듣습니다. 제 슬픔은 대개 그 정도면 누그러집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니만큼 가끔 주위에서 누군가 슬픔을 털어놓을 때면 미안합니다. 혼자 해결할 수 있을 슬픔이 아니니 저를 불러낸 것일 텐데 번번이 좋은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따끔하게 팩트폭력을 날리자니 내가 그럴 자격이나 있나 싶고, 다 잘 될 거라며 위로를 하자니 내가 뭘 안다고 그런 흔한 말을 하나 싶고. 얼마 전에도 잠긴 목소리로 제게 말을 건 친구가 있었는데, 어쩌면 좋을까 고민만 하다 시간이 다 가 버렸습니다.
뒤늦게 생각합니다. 그 친구에게 필요했던 것도 따뜻한 침묵이 아니었을까 하고. 언 들을 헤매는 그가 돌아올 따뜻한 곳이 있다는 것만 알려줘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고요. 이런 순간도 있는 거지, 많이 추웠겠다. 머뭇거리다 문을 연 그의 꽝꽝 언 얼굴을 덥힐 따뜻한 손을 준비하면서.
초중고등학교를 김용택 시인의 시와 함께 보낸 터라 일면식도 없는 시인이 이제는 옆집 맘씨 좋은 아저씨처럼 느껴집니다. 시인의 나이가 고희를 바라보고 있다고 하니 옆집 아저씨가 할아버지 다 되었네요. 시인의 시도, 시인도, 오래도록 이 세상에 있어주면 좋겠습니다. 그 따뜻한 손으로 울고 들어온 이들의 얼굴을 말없이 가만 감싸 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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