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석원, <보통의 존재>
저는 보통 사람입니다. 책 읽고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하고, 글 쓰는 게 취미인 평범한 사람. 사람은 저마다 특별하지만 영장목 사람과라는 생물학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공감받을 수 있는 보통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제 삶의 즐거움이고요.
그렇지만, 가끔은 나라는 존재가 평범의 범주를 영 좋지 않은 쪽으로 벗어난 것이 아닐까 불안합니다. 고작 한 달만에 회사에서 잘렸을 때라던가, 걱정해주시는 부모님 말씀이 머리로는 고맙지만 괜스레 짜증이 날 때라던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게임이나 할 때면 더더욱 그렇고요.
이럴 때마다 책을 한 권 꺼내듭니다. <보통의 존재>. 가장 좋아하는 작가나 책을 고르라면 한참을 고민하겠지만, 가장 손이 자주 가는 책을 꼽으라면 이 책을 고르겠습니다. 문장이 아름답다거나 인생의 깊이가 담겨서라는 등 모범적인 이유를 대도 틀리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책이 담고 있는 가공되지 않은 생각들 자체가 큰 위안이 되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아마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언니네 이발관>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언니네 이발관이 결성되었던 계기가 하이텔 게시판에 이석원이 '나는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보컬이다'라며 거짓말을 친 것이 먹혀서라면서요. 아니, 아무리 온라인에서라도 그런 거짓말을 해도 되나? 싶지만 남에게 피해 준 것도 없는 에피소드인데 그걸 트집 잡을 게 있나 싶기도 하고, 오히려 이런 솔직한 면이 있어서 밴드 이야기도 재밌게 꺼낼 수 있지 않나 싶고 그렇습니다. 그 이석원이 쓴 만큼 책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느껴집니다.
"아니,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소릴 지르니?"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하니까 그렇지." 이번에도 난 내가 이해가 안 갔다.
이제 '내일모레도 아닌 내일' 마흔이 되는데다 효심도 깊은 내가 왜 그러는 걸까.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사실 엉뚱한 말을 하는 엄마보다도 내가 더 이해가 안 간다. 아니라고 말하면 될 것을, 좋게 설명하면 될 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그토록 예의바르게 대하면서 정작 내 어머니한테만 이러는 이유를 나도 정말 모르겠다.
- '엄마가 말을 걸면 왜 화부터 날까' 중
돌이켜보면 씁쓸한 것은 사람이 결혼하자고, 우리 같이 살자고 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제발 헤어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고 싶다고 눈이 멀어서 맹렬히 달려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어 더 무서운 속도로 돌아오는 것. 그게 사람의 이기심이란 것일까.
- '결혼' 중
<보통의 존재>를 읽으면 38살 이석원의 꾸밈없는 조각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거나, 결혼을 하면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한다거나. 사회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권장하는 것들과는 노선이 조금 다릅니다. 아, 어린 시절 기르던 족보 없는 개를 콤플렉스로 여겨 진돗개와 맞바꾸자는 거짓말에 속아 보신탕 감으로 만든 이야기도 있네요. 아무리 에세이라지만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괜찮나? 싶어도 이런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공개 일기'라고 말할 만한 글이 되었구나 싶고, 또 그 솔직함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게 아닐까 합니다.
저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병원에 갈 때면 어떻게든 주사를 맞지 않으려 벌벌벌 떨고, 글을 쓸 때는 '이런 걸 쓰면 욕먹지 않을까' 덜덜덜 하며 자기검열의 기준을 높게 잡습니다. 이런 저에게 꾸밈없이 솔직한 이석원의 글은 읽을 때마다 새삼스럽습니다. 읽다 보면 왠지 안심이 되고 경외심도 밀려옵니다. 내가 하는 생각들이 특별히 이상한 건 아닐지 몰라, 어쩜 이 사람은 이렇게 솔직할 수 있담. 본인의 생각을 담담하게 숨김도 과장도 없이 내보인 점이 <보통의 존재>의 매력입니다.
심심해서 들어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지인들의 글을 보면 세상에 오늘 나처럼 쓸모없는 하루를 보낸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이석원처럼 서점을 거닐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에세이 베스트셀러 한켠에 꽂힌 <보통의 존재>가 보입니다. 다들 이 정도를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니, 내가 특별히 글러먹은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벌써 7년째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 책을 보노라면 한편으론 나도 더 솔직한 글을 써보자, 다짐도 하게 되고요. 여러모로 보통이라는 말이 특별한 힘을 주네요.
<내맘대로 잡다한 이야기>
- 마냥 행복할 때보단 '보통'이라는 말이 위안으로 다가올 때 읽으면 좋습니다.
- 워낙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엮은 것들이라 그의 모든 생각에 공감하진 못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타인과의 대화를 즐기시는 분이라면 작가의 솔직한 태도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실 겁니다.
- 언니네 이발관 홈페이지 '특집' > '일기' 메뉴에서 지금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 이석원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실리지 않은 옛날 일기 중에서도 와닿는 글이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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