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만큼 중요한 '과거를 인정할 용기'
지난 주말, 친구랑 잠실 롯데타워 구경을 갔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었지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본 건 처음이었다. '이거 무너지면 서울은 끝장나겠다' 같은 무서운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여차하면 길을 잃겠다 싶어 이동경로를 고민할 깜냥으로 안내책자를 꺼내들었다. 최상층은 전망대, 그 아래는 오피스랑 호텔로 쓰이고 있었다. 친구는 호텔이 어떤 구조인가 궁금하다며 구경가자고 나를 꼬드겼다.
76층 호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 쇼핑몰은 그렇게 북적이더니 이 곳은 한적해 호텔 직원 한 명만이 지키고 서 있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라고 물어보는데 그게 내 머릿속 번역기를 거치니 '볼 일 없으면 돌아가시죠?' 로 들렸다. 조금 주눅들었다. 호텔에 가려 한다는 친구의 말에 그 직원은 친절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주었다. 한참을 올라가 호텔 로비에 도착했는데 별로 둘러볼 만한 것이 없어 금방 내려왔다. 엘리베이터 앞 또다른 직원이 버튼까지 눌러 주며 배웅해 주었다. 민망했다.
"나는 이런 비싼 곳만 오면 쭈구리 찐따가 되는 것 같아."
"희한하네. 왜 그러지?"
"돈이 없어서 그런가? 누가 그러더라. 자신감은 내 통장 잔고만큼 가지게 되는 거라고.
아,
내가 초등학교 때 집에 빚쟁이들 찾아오고 그랬거든. 동생이랑 덜덜 떨면서 침대 밑에 숨었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비싼 건 나랑 안 어울리는 부담스러운 거라고 생각하게 됐을지도 몰라."
친구는 '그 옛날 일이 아직까지 문제가 되나?' 하며 고개를 갸웃했고 그 이야기는 곧 마무리되었지만, 저 짧은 몇마디가 내 머릿속을 며칠이고 맴돌았다. 그때 대체 왜, 맥락도 없이 빚쟁이에 시달리던 얘기가 튀어나온 걸까?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마음 한구석에 짱박혀 있다가 딱 그 타이밍에 튀어나온 게 수상해 기억의 뒤를 밟아 보았다.
나랑 가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아직까지 생생한 많은 기억들에 가난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 부모님 사업이 망해서 서울 집을 팔고 시골로 이사온 것, 빚 때문에 부모님이 갈라서네 마네 다투는 소리를 들은 것, 빚쟁이가 찾아왔다가 초라한 세간을 보고 차마 몇 마디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린 것, 수능을 잘 보고 신나서 부모님께 전화했더니 '솔직히 기뻐하지 못하겠다, 감당이 안 되겠다'고 한숨 쉬셨던 것, 대학시절 방 보증금이 없어서 몇년을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살았던 것과 과외도 알바도 끊겨서 정말 굶겠다 싶을 때 돈을 조금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가 "우리도 돈 없어" 이야기를 듣고 펑펑 울었던 것 등등등. 잊었다고 생각했던 나쁜 기억들이 끝도 없이 떠올랐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이제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나는 어쩌면 가난이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고.
3년 전쯤 출간되어 지금까지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는 <미움받을 용기>. 책의 뿌리가 되는 아들러 심리학은 '당신의 불안은 당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트라우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그 쿨함에 반했다.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나만의 삶을 살게 된다니. 크으. 멋져. 과거를 들춰보는 것따위 나에게 1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건 유쾌하지 못한 과거를 보낸 1인으로서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만드는 건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라고. 과거는 무시하자고.
그러다 보니 간과했던 거다. 나를 만드는 지금 이 순간들조차 결국은 나의 과거로 수렴한다는 걸. 그게 무시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여름이라 샌들을 자주 신고 다니는데 언젠가 바닥을 보니 껌이 붙어 있었다. 어떤 쓰레기가 길거리에 쓰레기를 뱉고 다니는 거야! 하고 혀를 쯧쯧 차긴 했지만 떨어지지 않는 껌자국을 신경쓰진 않기로 했었다. 많이 걸어다니다 보면 알아서 떨어지겠지 하고. 그런데 얼마 전 비가 많이 오던 날, 빗물로 더러워진 신발을 헹구는데 신발바닥에 붙은 껌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
한번 더러워진 신발이 깨끗했던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처럼 내가 겪은 가난의 서러움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무시해왔던 건 내가 과거를 신경쓴다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없는 결핍이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난의 기억은 신발바닥에 끝끝내 붙어 있는 껌처럼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거였다. 결코 풍족하진 않지만 굶지는 않을 정도의 돈을 버는 지금까지도 고급진 곳에 가노라면 쭈구리 찐따가 되는 건 아마 그 영향이 아닐까 한다.
'트라우마란 없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앞을 보고 나아가자.' 이렇게 멋진 말 많지 않다. 내 태도는 내가 결정한다는 거, 참 멋진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진 않네. 오래 만난 연인과 헤어질 때도 '우리 헤어지자' 카톡 하나 띡 보내고 잠수타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데 가난의 기억과 이별할 때 내가 딱 그랬고 우리는 서로를 떠나보낼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가난이 나를 자꾸만 고개 숙이게 만드나 보다. 스스로 가진 모든 결함을 불우한 과거 탓으로 돌리는 건 비겁한 일이지만 애써 쿨한 척하며 트라우마 따위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것도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무시 못할 과거 따위 없다는 말을 사뿐히 무시하기로 했다. 쿨하지도 멋지지도 않지만 트라우마는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듯하다. 뭐, 가난한 과거가 있었다 해도 내가 예쁘고 똑똑하고(사실확인이 불가능하니 막 던지고) 그 가난에도 불구하고 크게 탈선한 적 없이 잘 자랐고, 아무튼 여러 장점을 가진 것까지 빛바라진 않는 거니까. 이젠 천천히 내 결함들과 이별할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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