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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09. 2017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그래서 좋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친구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사회성이 부족할 것 같다거나, 내향적일 것 같다거나, 인생이 심심할 것 같다고 지레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노!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의외로 나는 회사에서건 사적인 자리에서건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고,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 거는 걸 서슴지 않는 성격이다. 심심한 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올봄 갑자기 백수가 되어 할일 없이 침대와 물아일체하던 시절. 마침 친한 친구들은 장기출장이다 논문 작성이다 바빠서 나와 놀아줄 여유가 없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게 딱 좋은 날에 일이 없으니 시간도 많고. 나가 놀고 싶은데 혼자 다닐 기분은 아니고. 이럴 때 맘 편히 불러내 어울릴 사람이 없으니 아쉽고. 그래, 친구를 만들어보자! 행동으로 옮길 에너지가 넘치던 때라 대학 시절 취업준비 스터디를 끝으로 하지 않던 단체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꽤 규모가 있는 직장인 독서 동호회였다.




  "저 오늘 차가 막혀서 30분 늦을 것 같습니다. 오늘 모임도 그만큼 늦게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들뜬 마음으로 첫 모임에 가던 중 단톡방에 올라온 동호회 회장의 공지 글. 모임 시작 10분 전에 이게 무슨 소리지? 예정된 시간에 딱 맞춰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사람들이 도착해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첫 만남인지라 옆사람과 소소하게 몇 마디 나누다 휴대폰을 만지며 30분쯤 시간을 버릴 뿐이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싶을 때쯤에야 도착한 회장. "자, 그럼 모임을 시작해 볼까요?"가 그의 첫마디었다. 그날 모임의 마지막, 심지어 뒷풀이 자리에서도 그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한 마디 사과가 없었다. 회장이라는 사람의 행동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모임 참가가 되었다.


  그 독서 모임 말고도 친구 만들기에 좋다는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름 노력을 해보았지만 웬일. 시간이 지나 새로운 회사에 적응을 마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 주위에는 친구가 별로 없다. 그래도 이제는 이유를 안다. 친구를 유난히 가려 사귀는 내 까탈스러움 때문이다.


  내가 곁에 오래도록 두고 싶은 친구는 이런 사람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기본적인 매너를 갖췄고, 자신이 잘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오만하지 않고, 겸손함을 가졌지만 자신의 가치관이 뚜렷한, 그 가치관에 내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


  많이들 그런 말을 한다. 주위에 다양한 사람을 두고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 나눠야 편협하지 않은 사고를 가질 수 있다고. 그 말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 자기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자부심이 하늘을 찔러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사람, 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의미라면 나는 그냥 편협한 사람으로 살란다.


  물론 세상에는 나를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개중에는 나와 어우러지지 않는 사람도 많게 마련이라는 걸 안다. 그런 사람과 이야기 나눌 일도 적지 않으니 아무쪼록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맞다. 그런데 그건 사회 생활, 공적인 자리에서의 이야기지 친구를 만드는 사적인 영역에서는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내 얼굴, 내 가족,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등등등. 태어날 때부터 많은 것들이 내 선택과 상관없이 주어져 왔다. 그래서 선택이 가능한 것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좋은 것으로 골라내고 싶다. 그게 내가 나를 아끼는 방법이다. 주위에 어떤 사람을 두는지에 따라 내 삶의 질이 달라지니, 친구를 잘 골라 사귀는 건 개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다. 내 주위는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채워갈 거다.


  나처럼 까탈스러운 사람에게도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좋은 글을 나눠 읽고, 좋은 음악을 나눠 듣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최근 유행하던 '알쓸신잡'을 보면서는 그런 생각도 했다. 봐, 맨날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도 좋은 사람들끼리 있으니 맨날 이야기가 재밌잖아! 내심 뿌듯했다. 나도 내 친구들이랑 매일 이야기 나눠도 질리지 않고 즐거운 걸!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그래서 좋다.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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