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내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May 19. 2017

내 10년 후 목표는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20대 후반, 미리 준비하는 꼰대 예방책

브런치 작가심사 많이 엄격한가요?


  오후 2시, 뜬금없이 날아온 카톡 하나에 읭?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 다니는 모임에서 한두 번 얼굴을 본 사이인데 "안녕하세요" 한 마디도 없이 대뜸 질문이라니. 저번에 지나가는 말로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 했었지만 처음 연락을 건네는 상황에서 자기 할 말만 던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적당히 답하니 이번엔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보신다. 5분만 검색해 봐도 답이 나올 텐데 왜 나한테 물어보지? 브런치 '자주 묻는 질문' 링크를 보내고 여기서 찾아보시라고 했다.


감사합니다ㅋㅋ;;


  ㅋㅋ;; 이모티콘을 보고서야 내가 너무 쌀쌀맞게 굴었나 싶었다. 이야기를 몇 번 나눈 적 있으니 나를 편한 사이라 여기고 거두절미 용건만 전달한 걸지도 모르는데. 모임 때 마주했던 그분의 인상도 좋았었고. 뒤늦게 미안해져서 자세한 상황을 다시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매뉴얼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을 물어본 건 아니었다. 오해를 풀고 대화는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왜! 왜 인사를 안 한 건데!

  우리 처음 갠톡하는 사인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다 보니 번뜩 예전에 학교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후배라 망정이지 너 같은 사람이 직장 상사였으면 난 이직했다."

  "엥 왜요?"

  "너무 깐깐해서. '이거 왜 마감 늦었어요?', '1분 지각했네요?', '왜 이 일을 이렇게 처리했죠?' 같은 말 하면서 후배들 피를 말릴 것 같은데."



  저를 너무 잘 아시는데요~ 라며 웃어넘겼던 말에서 이제야 뼈를 발견했다. 선배가 깐깐함이라고 뭉뚱그린 내 성격은 사실 잠재적 꼰대의 기질 중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인사 없음' 하나로 지나치게 까칠했던 건 내 기준에서 그 행동이 '당연히 지켜야 할 예의가 없는' 거였기 때문이다. 내가 유년기부터 10년을 넘게 살아온 고향은 삼촌이 마을 이장을 맡고 있던 시골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의 집집 숟가락 개수까지 공유하는 곳에서 자란 덕에 내 인사성은 평균 이상으로 밝아졌고, 인사성이 곧 예의바름이라는 나름의 기준도 생겼다.


  나만의 기준은 예의범절을 판단하는 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엔 토익 공부를 위해 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있다는 친구에게 '토익은 단어 암기보다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오지랖을 부린 적도 있다. 다행히 상냥한 데다 솔직한 그 친구는 "나도 정보를 많이 찾아봤고 내 나름의 판단으로 공부 방법을 정한 건데, 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내 판단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부끄러우면서 미안했던 그 상황이 지금과 겹쳐 보인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 무언가를 판단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만든 기준과 원칙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건 성격이 시원시원하다거나 추진력이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을 타인에게도 적용하는 건 부당하다. 내가 나이를 더 먹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금보다 커지게 되면 이런 성향은 꼰대의 길을 향하는 하이패스가 될 것이다. 내 기준이 항상 옳다고 확신할 수 없고, 사회적 보편성을 갖춘 '옳다'의 기준 또한 언제든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적 표현을 빌리자면 교통과 통신의 어마어마한 발달 덕에 세상이 달라지는 속도 또한 어마어마해졌다.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이며 가치관이 빠르게 변하는 것도 당연하다. 몇백 년 전만 해도 나 같은 평민 여성은 글을 쓰기는커녕 문맹으로 살아가는 게 당연했을 테니, 거시적 관점에서 세상은 더 살만한 곳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엣헴!" 하며 내 기준만 고집하고 철저하게 내 취향으로 구성된 주변인들의 의견만 듣는다면...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꼰대들과 내가 다를 게 없지 않을까. 누군가는 '꼰대짓'을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으로 정의했던데. 엥? 이거 완전 내가 했던 짓 아니냐?


  그리고 어제, 브런치 작가심사를 노리고 있는 그분을 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니 '처음 카톡을 보내는 상황에서 인사하지 않은 것'만으로 예의 없는 사람이라 낙인찍기엔 아쉬울 만큼 좋은 분이었다. 여태까지 사소한 일로 멀리해 온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좋은 사람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했다.


  그래서 만들었다. 여름의 자기맞춤형 '꼰대 되지 않기' 철칙 3가지.

  1.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대한다.

  2. 다양한 사람들의 '내 기준에 이상한' 언행에 대해 반박하기보다 이해하려 노력한다.

  3. 상대방의 언행이 범죄 수준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원치 않는 조언은 하지 않는다.


  아직 30살도 되지 않은 내가 벌써부터 꼰대가 될 것을 걱정하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이번 고민이 10년 후 나의 평판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 아, 혹시나 내가 10년 후 이 글을 공유하며 "내가 어릴 때 이렇게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엣헴!" 하고 떠벌리고 다닌다면 나는 이미 꼰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된 것이니 다들 피하시길.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