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과일 적선 받은 사연
기숙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이라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룸메이트인 세라프와 두이구가 손에 봉지를 잔뜩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물건들을 올려놓으며 와서 보라는 손짓을 했다. 봉지에는 약간의 과일과 채소, 옷 등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요일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이스탄불에는 총 13개의 큰 요일장이 있는데 픈득자데 금요 시장이 그 중 하나였다. 기숙사에서 큰 길 하나를 건너면 약 6분 거리에서 열렸다. 규모는 대략 광장 시장 정도의 규모였다. 특이한 건, 시장이 서는 특별 구역이 있는 게 아니고 일반 인가가 밀집한 골목에 좌판을 세우고 하루 동안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장이 열리는 구역의 골목은 목요일 밤부터 어디에선가 가져온 좌판들이 길가에 세워져 있었고, 이른 새벽에 좌판과 천막이 늘어서며 시장으로 변했다.
규모는 대략 광장시장 정도로 생각보다 훨씬 컸다. 마을 하나가 통째로 시장이 된 듯했다. 여유롭게 걸어다니며 구경을 하면 마을의 골목들을 누비며 다녀야 했기 때문에 두시간 정도 걸렸다. 마을 하나가 시장으로 변했기 때문에 입구나 출구가 따로 있지는 않았다. 우리 기숙사쪽에서 가면 옷과 속옷을 파는 구역의 시작점이었다. 당시 환율로 1리라는 700원쯤이었다. 5~10리라면 면티 하나를 살 수 있었으니, 꽤 괜찮은 가격이었다. 바지도 15리라 20리라 수준이었기 때문에 당시 영등포 지하상가나 고터 지하상가에서 옷을 사던 가격과 비교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디자인이 조금 촌스럽거나 핏이 안 예뻐서 5-10리라 좌판에는 발길이 잘 안 갔다. 신발은 대략 20-40리라 사이였는데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 온갖 메이커가 즐비했다. 상인들은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아주머니들에게 모두 정품이라며 호객 행위를 했다. 아주머니들 눈에는 나이키 꼬리가 왼쪽으로 가있는지 오른쪽으로 가있는지, 아디다스 불꽃이 세 개인지, 네 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많은 옷 좌판들을 지나다보면 내 또래 여자애들이 유독 모인 좌판이 있다. 자라, 망고, H&M의 잉여 생산품이나 B급 제품에서 택을 잘라내고 파는 좌판이었다. 튀르키예에는 위 브랜드의 재봉 공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기웃거리다 몇 벌 건진 기억이 있다. 택은 일부러 완전히 자르지 않아 어느 브랜드인지 유추가 가능했다. 브랜드 좌판의 상인은 여타 보세 좌판보다 최소 15-20리라씩은 더 가격을 붙여 팔았다. 그럼에도 늘 브랜드 좌판은 보물찾기를 하는 여자아이들로 붐볐다.
옷 구역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가면 속옷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무슬림이 많은 나라라 남녀의 구분이 분명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남녀칠세부동석에 가까웠다. 그래서 여성 속옷은 여성이 팔거라는 생각과 달리 대부분 아저씨들이었다. 히잡을 쓴 여자들도 자신의 속옷 사이즈를 거리낌 없이 얘기하거나, 아저씨가 어렵게 공수해 온 ‘어른용 속옷’ 컬렉션을 요청했다. 속옷 장수 아저씨는 남자이기 이전에 그들의 욕망을 공수해주는 수완 좋은 조력자인 듯 했다.
속옷 가게를 지나 넓은 길을 끼고 위로 올라가면 채소와 식재료를 파는 구역이 나왔다. 시장은 어디나 시끄러웠지만 채소 구역은 멀리서부터 가까웠음을 알 수 있었다. 경쟁적으로 자신의 물건이 가장 싱싱하다고 외치는 상인들의 목청과 더 깎아달라는 아주머니들이 북새통을 이루었고, 남는 게 없다고 양배추를 움켜쥐는 장면은 말 그대로 도떼기 시장이었다. 조금 더 걸어들어가면 꼬릿꼬릿한 치즈 냄새와 시큼한 올리브 냄새가 풍겼다. 진공포장된 공장 치즈는 기본적으로 있었고 무게를 달아 파는 치즈들은 기본이었다. 매주 보이는 한 노부부는 염소 가죽에서 숙성시키는 치즈를 가죽째로 갖고 나와 시장 한 켠에서 손님들에게 치즈를 팔고 있었다. 중간 중간 섞인 올리브 좌판 주변은 먹고 뱉은 올리브 씨앗이 즐비했다. 올리브 시식에 후한 튀르키예사람들은 다가가면 일단 먹어보라며 올리브를 한 스쿱 떠서 내밀었다. 올리브유에 절여져 반짝반짝 광이 나는 올리브는 구미를 당겼다. 유혹을 못 이기고 한 알 집어 입에 넣으면 너무 시고 짜서 금방 후회하고 말았다. 아직은 올리브맛을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긁어내면 사라지기라도 하는 양, 소태가 된 혀를 앞니로 쓸어가며 걸었다. 과일 좌판들이 나왔다. 자타공인 당도 높은 튀르키예 과일들은 올리브에게 당한 혀를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철마다 나는 과일들은 품목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1키로에 1-2리라 수준이었다. 내가 먹고 싶은 과일 한 줌이나 배 두어 개를 사면, 아저씨들은 귤 한두 개를 봉지에 슬쩍 넣어주셨다. 나는 그저 외국인에게 인심이 후한 줄로만 알았다. 그 진실을 알게 된 건 거의 10년 뒤였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채소든 과일이든 적게는 2~3kg, 많게는 5kg씩 산다.
훗날 직장 동료들이랑 시장에서 배 두 개를 산 이야기를 하니 박장대소를 했다. 어린 동양인 여자애가 와서 배 한 개, 귤 두 개를 사니 가난해서 kg 단위로 못 산다고 생각했을 거란다. 가여운 마음에 아저씨는 나에게 귤을 적선한 셈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단골 관리 잘한다며 매주 금요일 그 매대를 찾아가, 여름이면 체리 한두줌, 살구 서너개를 샀다. 겨울이면 석류 한 개씩 사서 행복한 주말을 맞이했다.
뭐, 나는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을 매주 즐겼고, 아저씨는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했을 테니 700원 남짓한 돈으로 서로 행복했던 셈이다.
과일 코너에서 쥐여주는 과일들을 먹으며 앞으로 가면 튀르키예의 대표 간식 괴즐레메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솥뚜껑같은 뜨거운 철판 위에서 종잇장처럼 얇은 밀가루 반죽을 즉석에서 밀어 치즈나 으깬 감자, 시금치, 페타 치즈 등을 넣고 사각으로 접어 굽는 음식이다. 기숙사에서도 종종 팔지만 희한하게 시장에서 먹는 괴즐레메맛은 따라올 수 없었다. 시금치 괴즐레메 하나를 사서 먹으며 걸어가면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 나온다. 플라스틱 대야, 수납장, 그릇, 포크, 빨래바구니, 주방용품 등 정말 웬만한 생활용품이 다 있었다. 나도 손빨래를 할 작은 하늘색 대야를 샀었다. 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이어서 걷다보면 이불과 카펫을 파는 곳이 나온다. 시장 구역의 끝이다. 늘 기숙사의 획일적인 침대보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해 새로 사고싶다가도 매주 빨래할 생각에 귀찮아 하늘하늘 나부끼는 침대보들 사이를 산책하다 돌아온다.
이른 아침 시작한 시장은 저녁 즈음 폐장할 준비를 했다. 여름엔 땅거미가 깔릴 즈음이면 닫았고, 겨울엔 알전구를 키고 장사를 하다 6시 전후로 좌판을 정리했다. 상인들도 손님들도 빠진 밤이 되면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가 즐비했다. 옷 구역은 포장했던 비닐들이 쌓여 있었고 채소 구역은 다듬은 채소 쓰레기들과 시든 이파리, 썩은 채소들이 구석에서 나뒹굴었다. 동네 집시들은 채소 무더기를 뒤지며 먹을만한 부분을 고르고 있었다. 집시들마저 떠나고 밤이 더 깊어지면 픈득자데가 속한 파티(Fatih) 구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시장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치웠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이 되면, 언제 시장이 섰냐는 듯 조용하고 깨끗했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매주 금요일이면 열리는 픈득자데 시장, 혹시 이스탄불을 여행하게 된다면 술타아흐멧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한 번쯤 구경가는 것을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