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내가 원하는 곳으로

by 김우현 Nergis


“할머니, 만약 떠나실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얘야, 이제 와서 내가 이 나이에 어딜 가겠니. 내가 이 마을을 벗어난다면, 그건 내가 죽는 날일 게다. 저 마을 밖 무덤에 묻히겠지.”



소유트알란 마을에서 조사하던 내용 중에는 ‘이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을 인구의 46.6%는 이주를 경험했다. 아울러, 마을 여성의 50% 이상은 타지에서 온 이주민이었다. 이주 여성의 76.5%는 같은 부르사 내에서 이동했으며, 5.9%는 발륵케시르, 2.9%는 테키르다 등으로 대다수가 마르마라 권역 내에서 이주했다. 그 외에는 흑해지역의 기레순과 트라브존, 내륙의 콘야, 동부의 반 등에서 이주해 왔다.


우리는 이주 유형을 방향에 따라 출발지를 앞에 두고, 도착지를 뒤에 두어 농촌-농촌, 농촌, 도시, 도시-농촌 도시-도시 넷으로 나누었다. 첫 이주의 원인은 대부분 ‘결혼’이었고, 농촌-농촌 유형이 가장 두드러졌다. 다른 마을에서 소유트알란 마을로 시집을 온 것이다. 이어서 많은 유형은 도시-농촌 유형으로 이주해 온 여성들이었다. 이들이 마을로 이주해 온 이유가 흥미롭다. 소유트알란 출신 부부가 읍내인 무스타파케말파샤로 나가 살다가 이웃 처녀를 소유트알란의 총각에게 소개해준 케이스가 많았다. 그 외에는 중신 결혼을 통해 타 도시에서 이주해 온 케이스들이었다. 그 외에는 아버지 및 가족의 직장 문제로 이주를 경험한 여성들이 많았다.


자히데 할머니는 산너머 타타르족 마을 출신이었다. 남편인 메흐멧 할아버지는 소유트알란 출신으로 일을 하러 매일 할머니네 마을로 갔다. 마을에서 매일같이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이 생겼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아버지에게 딸을 달라고 했지만 아버지가 완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는 몰래 도망쳐 할아버지의 마을로 왔다. 그렇게 할머니는 처음으로 마을 밖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 이후 할아버지의 일 때문에 도시로 나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두 부부는 마을로 돌아왔다.


두 번째 이주 사유는 남편의 직장 때문이었다. 젊어서 타지에 살다가 노년에 귀향한 아이누르 할머니는 소유트알란 출신이다. 남편은 읍내 출신이었고, 중매를 통해 결혼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읍내에서 살았다. 남편은 교사였는데 흑해 지역의 시놉(Sinop)으로 발령이 나 함께 시놉으로 이주했다. 세월이 흘러 남편은 고향에서 근무하고 싶어 했고 무스타파케말파샤로 발령이 났다. 그러다 남편과 사별 후에는 고향인 소유트알란 마을로 돌아와 혼자 지내고 있다.


할머니께 할아버지와 다니던 곳들이 좋았는지 여쭤보았다. 그저 남편이 가니 따라다녔다고 하셨다.


“할머니, 만약 떠나실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얘야, 이제 와서 내가 이 나이에 어딜 가겠니. 내가 이 마을을 벗어난다면, 그건 내가 죽는 날일 게다. 저 마을 밖 무덤에 묻히는 날이 내가 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날일 거란다.”


그렇게 말하고 아이누르 할머니는 마을 입구 쪽을 쳐다봤다.


지금까지 마을의 여성들은 남편을 만나기 위해, 남편을 따라 이주를 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10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내가 조사를 하던 2016년 당시 중학생이었던 마을에는 푼다와 셀린, 제이넵이라는 동갑내기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푼다와 셀린은 대학을 가면서 도시로 나갔다. 제이넵은 취업을 선택해 큰 공장이 있는 이웃 마을로 갔다. 이후 푼다와 셀린은 교사가 되어 도시에서 지내고 이따금 본가의 부모님을 찾아온다. 제이넵은 결혼을 하며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만약 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다면 첫 이주 사유는 진학과 취업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주 사유에는 직장 이전 등이 될 것이다.


이처럼 한 산촌 마을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주의 양상은 뚜렷하게 달라진다. 과거의 여성들이 남편을 만나기 위해, 혹은 남편을 따라 이동했다면,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은 진학과 취업이라는 자신의 선택을 따라 마을을 벗어난다. 이동의 방향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의 동기는 달라졌다. 이주는 더 이상 누군가의 삶에 편승한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는 과정이 되었다.


아이누르 할머니에게 마을 밖으로 나가는 날은 삶의 끝과 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푼다와 셀린, 제이넵에게 마을 밖은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같은 길을 지나가면서도, 누구는 따라갔고 누구는 선택한다. 결국 이주의 변화는 단순한 인구 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가 아니라

“당신은 어디를 선택하시겠습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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