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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Mar 26. 2018

겨울 바다와 해녀

헤이즐의 잡설

작년 겨울, 성산읍 삼달리에 잠시 머무를 때가 있었다.
한달살이를 하는 삼달삼달이라는 곳이다.

삼달리, 여름에 알게 된 동갑내기 해녀도 그 곳에 살았다.
삼달삼달은 바닷가 바로 앞,
그녀와 해녀 삼춘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허락을 구해 어촌계 삼춘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녀가 물질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로 했다.

** 본문에 나온 사진들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초상권이 있는 개인의 허락을 구하고 찍은 것이니 무단전재와 배포, 공유는 삼가주세요.


물살이 센 날이었다 (사진 너굴양)


바다로 가고 있는 해녀 (사진 너굴양)
입수 (사진 너굴양)
소라를 던지는 해녀 (사진 너굴양)


한참 물질하는 모습을 찍고 있는데
지애씨가 소라를 던져준다.
토실~한 소라, 이날 혼자 60kg를 잡았다고 한다.

벌써 5년차 해녀가 된 지애씨,
물질하랴 과수원하랴 아이들 돌보랴 항상 바쁘다.
삶을 1분도 허투루 안쓰는 것 같은 제주 여성의 전형 같다.

동갑내기면서도 언니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깊이는 저마다 다르니까.

점점 나이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묻어난다.
만나고 이야기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게 나이가 드는 것일지도...)


다가오는 파도 (사진 너굴양)
물질 (사진 너굴양)
숨비소리를 내다 (사진 너굴양)

지애씨의 엄마도 해녀다.
상군해녀, 그러니까 먼 바다까지 갈 수 있는 실력이 되는 해녀다.

지애씨는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에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 (글 고희영, 그림 에바 알머슨, 번역 안현모 / 난다)


이 책에는 '숨비소리' 이야기가 나온다.
해녀는 특별한 산소공급 장치 없이 프리다이빙을 한다.
숨을 참으며 작업을 하다가 물 밖으로 나오면
코에서 '호오이~'하는 숨비소리가 난다.

나도 이날 촬영을 하며 가까이에서 숨비소리를 들었다.
휘파람 같이 높고 길게 뽑아져 나오는 소리.
'살아있다'는 소리 이기도 하다.

해녀가 바다로 들어갈 때는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물질을 하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늘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기에,
함부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한다.

그렇게 바다에서 작업중인 해녀들이
마침내 물밖으로 나와 내뱉는 숨비소리를 들으면
어딘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삼달리 바다 (사진 너굴양)
풍덩 (사진 너굴양)
테왁과 망사리 (사진 너굴양)
삼달리 어촌계 불턱 (사진 너굴양)


지금이야 어촌계마다 양옥을 지어놓고
옷도 갈아입고 보일러도 떼고 하지만

전에는 돌담을 쌓아놓고 가운데 불을 피워놓고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불턱이 있었다.
물에 젖어 체온이 떨어진 몸을 덥히고
작업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하던 사랑방 역할을 했다.

물질하는 곳마다 불턱 자리가 남아있는 곳이 많다.
지나가다 불턱이 보이면 해녀들이 작업하는 바다라는 뜻이다.

해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육지 사람들에게는 아직 피상적으로만 알려져있다.

신비로운 존재같지만 매일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강인한 사람들,
보물창고 같은 바다에서 필요한 만큼만 수확할 줄 알고
사라져가는 제주 공동체 문화를 잇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해녀다.

나도 제주에 와서 직접 해녀 삼춘들을 만나고,
관심을 가진 후에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와서 보고,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직도 배우고 경험할 것이 많으니
제주 자체가 나에겐 보물창고인 셈이다.

봄이 오고, 다시 물때가 온다고 한다.
모든 해녀삼춘들이 안전물질 하시길,
맛있는 해산물 하영(많이) 잡아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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