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굴양 Aug 19. 2019

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박진희, 앤의서재)

헤이즐의 잡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새는 제각각이지만, 유독 우리 사회는 정해놓은 순서에 따라 살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는 본인이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나 불안해한다. 물론 점점 삶의 가치관이 다양해지면서 각자에 맞는 삶의 방식을 지켜내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고, 그 양상은 직업, 결혼, 출산, 거주지 등에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꼭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처음 느꼈던 건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다. '못해먹겠다'는 심정으로 때려친 회사 밖에서 나는 참 고단하고 추웠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관계가 깨지기도 했고, 혼자 세상 짐을 다 짊어진 마냥 괴로워하며 꾸역꾸역 내가 원하는 길을 걸었다. 미련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나는 차장으로 승진했을까? 연봉은 올랐을까? 얼마나 모을 수 있었을까? 이런 시덥잖은 생각을 해가면서.


외주 노동자와 작가의 사이에 서서 줄타기를 하며 몇 년을 지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처럼 회사에 매여 쳇바퀴를 돌리는 것에 염증이 나 자기 일을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가족을 위해 지긋지긋한 회사를 그만 두지 못하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정적인 일을 그만두고 모아놓은 돈으로 갑자기 여행을 갔다와 책을 쓰고, 그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사람은 한 두명이나 있을까, 결국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이모양 저모양으로 삶을 살아가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안도했다. 그리고 일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생기면서 살아가는 곳에 대한 고민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것이 제주였다. 그리고 나는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제주에 한달살이를 하러 갔다가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으며, 만 2년이라는 시간을 제주에서 살았다. 처음 제주에 갔을 땐 여행하는 마음이었고, 본격적으로 짐을 싸서 내려갔을 땐 '제주에서 어떻게 살까'를 고민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제주에 정착하려는 뭍사람들은 많았고, 그들의 사는 모양새도 각자 달랐다. 물론 제주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 제주가 주는 자유로움을 누리면서 일상도 지켜내는 그들의 모습도 누구보다 치열했다. (사는게 마음같지 않아 바닷가 노을을 보러가는 일상을 누리지만 속이 시커멓게 타는건 다 똑같다. 다만 바다를 보며 마음이 빨리 풀릴 수는 있겠다)


나는 누군가 '틀렸다'는 삶을 살고 있었을까?


착실히 4년제 대학을 졸업해 몇 년 동안 직장에 다녔고, 인정받았지만 공허했다. 회사 선배들은 '다 그렇게 사는거'라며 다른길을 가려는 나를 말리기도 했다. 지금까지야 '그래 너 잘했다' 소리까지는 못들어도 '네가 원하는 삶을 산다면 나도 좋다'는 동의는 얻어낸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진 않지만 나도 기왕 시작한 거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놈의 인정욕구 때문에)


그러다 제주에서 글을 쓰는 언니를 알게 되었고,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여러 사람의 인터뷰가 함께 실렸고, 우리 부부도 한 꼭지를 차지했다. 사실 제주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결국 어디에 살건 사람들은 자기 길을 찾아 열심히 살려고 한다. 제주가 주는 특수성이 육지와 조금 다를뿐이고, 자발적으로 사는 곳을 제주로 선택한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점 같은 것이 있을 뿐이었다.


제주가 좋아서, 어쩌다보니 제주에 살게 되어서, 다 잊고 떠나고 싶어 온 곳이 제주라서 등의 이유로 그들은 제주에 왔고, 제주에 살고 있다. (우리 부부만 육지에 돌아온 듯 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어디에 살았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려고 무던히 애썼을 사람들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쓴 작가 본인도 도시의 삶에 지쳐 결혼과 동시에 제주에 왔고, 어쩌다보니 가족도 함께 왔다고 한다. 목수를 꿈꾸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들을 기르며 그녀는 글을 쓰고, 살림을 하고, 제주를 걷는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도 제주라는 곳에서 삶의 방식을 바꾸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성실히 직장을 다니며 제주의 자연을 누리는 사람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법을 배워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부부 역시 제주가 주는 불확실성을 최대한 즐기자는 마음으로 제주살이를 했다. 


작년 봄 쯤, 제주에 내려가 자리를 잡기 위해 애쓰던 시간이 있었다. 하려고 하는 일은 잘 안되고, 마음은 급했다. 어떤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차를 렌트했었는데, 충동적으로 애월 바닷가에 노을을 보러갔다. 하필이면 그날 손에 꼽을 정도로 멋진 노을을 볼 수 있었다. 불타는 듯한 태양이 하늘을 주홍빛과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바닷속으로 사라져가는 순간, 남편(당시 남자친구)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래서 제주를 못끊지."


그 날의 노을은 우리가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고, 살아가며 나를 버티고 나아가게 해주는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무엇이든 나에게 확실한 그 힘이 있다면, 어떤 순간에도 우리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 무언가가 각자 다르듯이 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




결혼을 앞두고 메일이 왔다.

제주에서 여러모양으로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결혼식을 치르고 제주에 내려와 박진희 작가를 만났다.


남편과 셋이 3시간을 떠들었는데 너무 즐거웠다.

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이렇게 재밌구나...

인터뷰를 하러 가는 입장에서 당하는 입장이 되어서

해도 되나 좀 고민했었는데 하길 잘한게 되었다.


책이 나올 즈음 우리는 서울로 이사를 왔고

언니는 따끈한 신간과 아가를 위한 선물을 함께 보내주었다.


어디에 있던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애써보자는 응원이 담겨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수국의 계절이 돌아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