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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Oct 05. 2021

매일 바쁜 것 같은데 돌아보니 한 게 없네

가끔씩 에세이


여름에 글쓰기 모임까지 가입해 일주일에 2-3번은 글 같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건만, 1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5-6편의 초고만 쓴 채 여름이 다 지나갔다.


마스크를 껴서 그런지 유독 더 더웠던 여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연중 가장 큰 작업을 마무리했고, 새로운 일을 하나 더 했다. 두 번의 백신을 맞고 두 번 어마어마하게 체했으며, 덕분에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 어느 때보다 자주 오셔야 했다. 그리고 남편이 7년 만에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아기를 낳고 처음으로 주중 풀타임 육아(thanks to 어린이집)를 한지도 두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여름 사이에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엄마 좋아, 엄마 하지 마, 엄마 도와줘…)


뛰지마…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매일같이 새로운 이벤트의 연속이었을 것 같지만, 일기장처럼 쓰고 있는 나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내려보면 매일이 이렇게 지루한가 싶을 정도로 똑같다. 오늘은 아기가 뭘 했고, 나는 얼마나 힘들었고 피곤한지를 나열한 것들 뿐이다. 분명히 하루하루 열심히 바쁘게 살았고, 순간순간 어떤 생각을 했고, 가끔은 깊은 성찰을 하며 지나온 시간들은, 그때의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한 게 없이 지나간 세월’ 취급을 받는다.


한동안 감사일기를 쓸 때가 있었다. 오늘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찾아 쓰다 보면 어떤 날은 다섯 가지 여섯 가지 줄줄 쓸 수 있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머리를 쥐어 짜내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돌아보며 겨우겨우 세 가지를 채운다. 사실 가족들 아픈데 딱히 없고,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없으면 평화로운 하루를 보낸 것인데, 감사할 일마저 새로운 것들을 찾으려다 보니 온갖 것에 감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곤 했다.


시간을 쪼개 자유부인 놀이


요즘 나의 하루는 늘 비슷하다. 주중에는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하원 하기 전까지 7시간 동안 집안일, 돈 버는 일, 나를 충전하는 일(feat. 커피와 책과 넷플릭스), 돈 쓰는 일 등을 한다. 그 사이에 밥도 두 번 먹어야 하고 하원 후 놀아줄 준비를 해야 하니 늘 시간이 없다. 몸이 안 좋으면 아기 반찬은 휘뚜루마뚜루 된장국과 카레로 퉁치고 낮잠을 자거나 병원/약국에 가야 한다. 주말에는 집에만 있기 아까워 공원이나 쇼핑몰(사랑해요 신시아), 할머니 댁에 가는 루틴 속에 있다. 아기는 여름 내내 밤잠을 설쳐 엄마를 찾았고, 나는 남편 옆에서 잠들었다가도 깊은 밤이나 새벽에 자리를 옮겨 아기 침대 옆에 좁은 매트리스를 깔고 쪽잠을 자는 날이 많았다.새로운 것을 찾기도 힘들고, 찾아도 기록을 남길 시간이 없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여름 내내 화가 나 있었다.


조금만 힘을 쓰면 뒷머리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불안정하게 뛰어다니는 아기를 붙잡으려 쫓아다녀야 했다. 몸이 지치면 남편이나 아기에게 화를 냈고, 잠든 아기 얼굴을 보며 울었다. (자는 남편을 보면서는 울지 않았다. 깨워서 울었다.)


남편은 매일같이 회사에서 시달렸고, 출퇴근 길에 대중교통을 너무 오래 타다 보니 밤마다 파김치처럼 푹푹 익은 채 잠이 들었다. 미혼자 중심, 빠른 템포로 돌아가는 팀 환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낮에 아기 사진을 보내주면 집에 오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라고 나 자신에게도, 남편에게도 말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선택과 모험을 감당하며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이번 여름의 큰 변화들을 몸에 익히고 적응하는 과정이 무척 고되다고 느꼈다.


제대로 얼굴을 보는 날은 주말뿐인데, 우리는 주말에 싸웠다. 서로의 말을 좀체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누가누가 더 힘든가’만을 나열하기 일쑤였다. ‘듣는다’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일단 꾹 참아야 하는 것인데, 더워 죽겠고 힘들어 죽겠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기념일에 커플링으로 극적화해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아기가 말을 더 잘하게 되고, 같은 듯 다른 듯 굴러가는 매일에 적응을 해가면서 펄펄 끓는 마라탕 같던 우리도 조금은 차분해졌다.


매일 3시간 이상을 서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던 남편은 끝내 족저근막염을 얻어 신발을 바꾸고 약을 먹는다. 차도 연비가 좀 더 좋은 것으로 바꿔 차로 출퇴근하는 날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그만 불평하고 나한테 좀 더 관심을 주려고 한다. 할 일이 좀 미뤄져도 (예를 들면 분리수거나 욕실 바닥을 닦는 일) 동네에 있는 예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아이패드를 꺼내어 글을 쓰는 이런 시간들을 가지는 거다. 그러면 또 충전이 되어 집에 가서 밀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해야 하는 집안일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고 1시간 동안 최대한 모든 것을 끝내 놓는다는 팁도 실행해보기로 했다. 예능을 보며 느릿느릿 집안일을 해 버릇하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금방 지쳤는데, 짧은 시간을 바쁘게 움직인 다음에 차라리 드러누워 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충전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은 최대한 빨리 쳐내기로 했다. 


세 아들을 키우며 얼마 전 등단한, 나에겐 육아 구루와 같던 언니는 오늘 아침에 페이스북에 자신을 ‘불도저’로 표현했다.(아기를 키우다 진짜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언니에게 연락하곤 하는데 몇 마디 말로 굉장한 위로를 받는다) 엄마라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 갓 등단한 신인 작가로서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일들만 하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가지치기를 한다고 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려는 욕심쟁이처럼 굴며 손에서 모래알같이 빠져나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움켜쥐고 울고 있다가 언니의 글에 뒤통수를 맞았다.


다 가질 수는 없다.

 


어차피 공을 몇 개씩 저글링 하며 발 밑에도 큰 공을 굴리는 신세라면, 손에 쥔 공 몇 개는 버리는 것이 낫겠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니. 작가로서의 나를 잊지 않으려면, 읽고 쓰고 그리는 행위를 멈춰서는 안 된다. 그리고 최대한 그것들을 어딘가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그래도 주말엔 나들이 꼭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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