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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림 Sep 08. 2023

아파.

그리고 미워.

아팠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어떤 것부터 적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시작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장 아팠던 날들은 기억이 난다. 그 무렵엔 몸도 마음도 더는 되살릴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차라리 암처럼 큰 병에 걸린 거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런 큰 병 하나라면, 그 병 하나를 치료하면 다른 것들은 나아질 게 아닌가. 여기저기 괜찮은 곳이 하나도 없던 탓에 그 편이 더 쉬워 보였다.


남들은 20대 중후반에나 몸이 망가진다던데 나는 고작 스물셋도 못 되어보고 이런 꼴인 게 못내 억울했다. 짧은 삶을 살아오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이럴 거면 나이라도 많이 먹지 여태 뭐 했나 싶었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고작 이 나이에 이렇게 아프면 남들이 아프다던 그 나이에 나는 얼마나 더 아플까. 징그럽네.


몸 어딘가에서 시작된 통증이 뇌로 올라오는 감각이 싫었다. 맥박과 함께 올라오는 통증이 자꾸만 귀에서 울려대서 고막을 찢어버리고 싶었고, 그 통증이 관자놀이 어딘가에서 뇌와 함께 박동할 때 불현듯 깨달았다. 고막을 찢는다고 이 거지 같은 맥박이 사라지지 않을 거란 걸.


그래서 난 아픈 내가 싫었다. 통증이 뇌로 치솟는 게 더없이 역했다. 손끝이 가늘어져 끼고 다니던 반지가 맥없이 손에서 떨어지는 게 싫었고, 체중계에 오를 때마다 어김없이 떨어지는 숫자가 싫어 체중계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마다 위가 끊어질 듯해서 차라리 정말로 끊어버리고 싶었고, 원래도 가지고 있던 빈혈은 자길 잊지 말라는 듯 매일같이 혀끝에서 아린 맛을 자아냈다. 덕분에 먹기도 싫었던 음식이 맛도 없어져서 참 고마웠다. 아파서 먹기 싫은 것보단 맛없어서 먹기 싫은 게 핑계 대기엔 더 좋지 않은가.


매일같이 자판만 두드린 탓에 손마디가 욱신거렸고, 제때 치료하지 못한 다리로는 제대로 걷지도, 앉지도 못했다. 계단을 내려갈 땐 무언갈 짚지 않으면 자꾸만 발목이 꺾였고, 앉아있는 시간이 30분을 넘기면 발목에서 무릎을 타고 허벅지까지 저렸다. 편두통이 오지 않는 날이 없었고, 생리통은 점점 심해져 약을 먹어도 약효가 3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날이 더우면 햇볕에 두드러기가 났고, 날이 추우면 감기약을 끊을 수가 없었다. 감기, 독감, 종국엔 코로나까지. 그 무렵엔 일주일만이라도 약을 끊는 게 소원이었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지,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지 분간할 수 없었다. 둘 다 이미 바닥까지 꺼진 느낌이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무의미했다. 몸이 아플 때마다 우울했고, 우울할 때마다 몸이 아팠다. 덕분에 울지 않는 밤이 없었다. 하루는 다리가 아파서, 다음 날은 세상이 미워서, 다시 그다음 날은 위가 끊어질 것 같아서,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미워서.


세상 모든 것들을 미워하고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 사실조차 미워했다. 어떤 것도 좋아할 수가 없어서 목 끝에 걸린 역겨움을 따라 장기를 모두 토해내고 죽고 싶었다. 그 무렵의 내가 자해를 하지 않고, 어디선가 떨어지지 않고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렇게 죽어야 한단 것조차도 미워했기 때문이리라. 마음을 접고 몸을 갈아서 도착한 말로가 이렇게 활자로도 적히지 못하고 20대 자살률의 잉크 하나도 되지 못할 죽음이 될 거란 사실이 싫었다. 빌어먹을 세상에 먼지 한 톨만 한 점 하나도 찍어주기 싫었다.


나조차도 싫어하면서 좋아한 게 딱 하나 있었다. 이불. 그건 좋았다. 바쁘게 살 땐 보기 힘들었던 물건이라는데 자조하면서도 해가 뜰 땐 빛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물건이 되어줘서 좋았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편안해졌다고 생각했다. 예고 없이 뛰는 심장이 불안장애인 줄 몰랐고, 늘 메여있던 목이 우울증인 줄 몰랐고, 하루종일 울리던 이명이 스트레스인 걸 몰랐기에 그 모든 게 세상밖에 나오지 않고 내 이불속에만 있다는 게 편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역겨운 고통만은 온전히 내 것이라 그것들을 가만히 느끼는 게 편안함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딱 이 글을 쓰는 지금처럼 남의 집 불빛조차 들지 않았던 새벽녘의 어느 날, 깨달았다. 더는 원하지 않는다.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듣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도,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더는 무엇도 원하지 않는다. 마음이 죽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목소리를 잃고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처럼 서서히 세상이 살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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