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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림 Jan 07. 2024

일어났어야만 했을 일

언젠가, 반드시, 한 번은, 꼭.

글을 쓰는 건 마치 운동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서, 쓰지 않는 날이 길어질수록 쓰는 법을 잊는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바람이 부는 밤을 어느 추운 겨울밤으로밖에 적지 못하게 된다. 한동안의 내가 그랬다. 몇 년을 써 온 글을 잊고, 불현듯 깨달았던 문장들을 잊고, 읽었던 모든 글을 잊었다.


그리고 글 쓰는 법을 깨달은 언젠가처럼 길을 걷다 문득, 글과 함께 잊었던 것들이 물밀 듯 되살아났다. 그저 밤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먼지 쌓인 탁한 주홍빛 가로등이 켜진 밤길을 걸은 건 언제였는지. 언덕 위 편의점이 아니라 야트막한 반찬가게와 불 꺼진 수공예집 사이로 반짝이던 편의점을 지난 건 언제였는지. 생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건 무슨 느낌이었던지.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어부지리로 스무 살에 끼어버린 나는 열여덟의 어느 날, 소망 위에 덧댄 천이 서서히 뜯겨 나간다는 글을 적었다. 내가 쓴 글이 아닌 것 같았다. 실밥이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생생하게 몸의 곳곳으로 퍼져나가되 뜯기는 아픔은 잠시도 끊이지 않는, 가장 잔인한 속도로 너덜너덜해지는 마음을 적었더랬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언제부터 우울했는지 모르겠다던 비아냥의 답을 찾았다. 소망을 접었던 마음을 또 한 번 접고, 또다시 접다가 뜯긴 자리가 잔뜩 접 보이지도 않게 되자 끝내 맥이 풀리지 않았을까. 그러니 아침마다 차에 치이길 기도하면서도 그게 우울인 줄 몰랐던 게 아닌가 싶다.



거세게 휘모는 눈을 짓밟을 때마다 그런 것들이 차올랐다. 막힘없이 글을 쓰던 감각, 수평을 맞춰 공들여 사진을 찍던 감각, 눈이 좋았던 언젠가, 눈보다 비가 더 좋았던 언젠가, 온종일 소설을 읽던 날들, 사람을 좋아했던 날들. 언제 잊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게 내게서 녹아 없어진 것들.


방수라곤 되지 않는 빌어먹을 부츠 끝이 젖을수록 그 부츠를 처음 사고 기뻐했던 언젠가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더는 고쳐지지 않을, 부츠보다 더 빌어 처먹은 발목이 떠올랐다. 내 왼쪽 발목은 한때 제대로 걷지도,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로 크게 고장 났었다. 지금이야 멀쩡히 걸을 수 있지만, 여전히 뛸 순 없다. 틈만 나면 삐끗하고 스트레칭을 하루 거르면 다음날은  종아리까지 욱신거린다. 나는 그 발목이 더는 낫지 않을 걸 안다. 구두를 신으려면 객기를 부려야 하고 겨울이면 아침마다 시린 바람 발목 칼로 찔린 듯 아플 거다. 하지만  상태가 가장 좋은 상태다. 원망스럽게도, 그렇다.


그래도 나는 구두를 신을 거다. 나는 여태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아프던, 싫던, 밉던, 해야겠다 마음먹었으면 하는 거다. 코딩을 배울 때도, 악기를 놓을 때도, 어리다 무시당할 때도, 내가 남자였으면 좋았을 거라던 말을 숱하게 들었을 때도 그랬다. 아프고 억울하고 싫었지만, 그저 했다. 보란 듯이 너흴 엿 먹여야겠다는 마음으로 그저 했다. 그래서 나는 못 돼먹은 발목한테도 그러기로 했다. 네가 아프던, 말던, 보란 듯이 엿 먹이며 살아야지. 발목이 그렇게 되도록 날 버려둔 나한테도, 그렇게 되도록 날 몰아간 모든 것들에게도. 다 그렇게 살아야지.


그렇게 처음으로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던 문구에 닿았다. 난 애쓰며 살겠다던 유튜브의 어느 문구를 여즉 기억할 정도로 애썼다는 말을 미워했다. 애썼다는 말이 애써보려다 망가진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애쓰기도 싫고, 고작 그걸로 다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싫. 하지만 오늘에서야 드디어 그게 왜 위로인지 알 것만 같다. 그거면 되었던 거다.



내 우울증은 언젠가 일어나야만 했을 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몰리지 않았더라도, 누군가 내게 버스에 치이고 싶은 게 정상은 아니라 말하지 않았어도, 일찌감치 정신과를 제 발로 걸어 들어가지 않았더래도 분명 난 언젠가 우울해졌을 터였다. 내 소망이 시골집 감나무에서 떨어진 병든 이파리만도 못했다는 걸 안 이상 그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언제가 되었건 이랬을 거다. 그래서 내가 우울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멍청한 IF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를 인내의 창 너머로 던져버린 일련의 날들 덕분에 일찌감치 우울해질 수 있어 고마워하기로 했다.


선유도 공원의 한강에서 마포대교의 문구를 비웃으며 떨어져 죽지 않았던, 겁 많은 나한테 고마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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