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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림 Mar 15. 2024

케이크 하나, 둘도 아닌 한 조각

케이크가 먹고 싶었다. 많이는 말고, 반 조각이나 한 조각만. 2월 초입의 어느 날부터 먹고 싶었는데 아직도 먹질 못했다. 몇 년이고 먹지 못한 생일케이크가 그리워서 그랬는지, 생리를 앞두고 호르몬이 그렇게 먹길 원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느닷없이 케이크가 먹고 싶었다.


아마 누군가 내게 케이크를 먹자고 말했다면 나는 흔쾌히 먹고 싶은 건 먹어야지 하며 카페던 베이커리던 어디든 가자고 했을 터였다. 고작 케이크 한 조각이 못 먹을 정도로 비싼 음식도 아니고, 그걸로 기분 좋은 만족감이 든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일 테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먼 과거에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화자를 나로 바꾸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같이 케이크를 먹으러 가자 말하지도, 그렇다고 혼자 먹으러 가지도, 케이크를 사 들고 와 집에서 먹지도 못했다. 고작 너를 나로, 모음 하나 뒤집었을 뿐인데 그게 안 됐다.


머리 한쪽에서는 그저 먹고 싶은 음식 하나일 뿐이라며 무얼 고민하냐며 나를 다그쳤다. 하지만 그 작은 한쪽보다 더 많은 다른 쪽 머리들은 생각이 달랐다. 내가 오롯이 나를 위해 그런 걸 사 먹어도 될지, 그게 밥도 아니고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도 아닌데 굳이 사 먹어야 할지, 원체 단 걸 잘 못 먹는 탓에 시간이 좀 지나면 잊힐 욕구일 뿐이니 참는 게 좋지 않을까 하며 끊임없이 먹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거의 한 달 내도록 그랬다. 몇 주 내내 먹고 싶어 떠올리면서도 사실은 먹고 싶지 않았으니 핑계를 지어내는 거라며 그 마음이 잊히기만을 기다렸다. 아닌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참았다.     



나를 위해서 무언갈 한다는 게 무서웠다. 케이크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곱씹으면서 어렴풋이 느꼈다. 내 뇌의 대부분은 나를 위해 무언갈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래도 될지를 수없이 고민하고, 손익을 재고, 망설인다. 빌어먹게도 한 번도 그러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사람은 익숙한 것을 찾게 된다. 익숙해 질만큼 자주 한 일은 그만큼 안전하고 좋은 일이라는 것의 반증이니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봤다. 정말 가만히, 음악조차 듣지 않고 생각해 봤다. 분명 나는 내 것이 있고, 내가 내 돈을 벌어서 산 것들도 많은데 왜 날 위해 고작 케이크 한 조각 먹는 건 망설이고 있는지. 방에 꽂힌 내가 산 책과 내가 산 인형, 내가 산 옷과 악보들을 보며 그것들을 살 때를 떠올렸다.


아주 어릴 적, 인형을 좋아하기도 전부터 책을 좋아했는데도 초판본 표지의 데미안과 프랑켄슈타인, 더글라스 케니디의 모먼트,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따위의 몇 권 되지도 않은 책들을 사면서 적어도 네댓 번은 넘게 책을 들었다 놓으며 고민했다. 귀걸이를 좋아하는데도 내가 산 건 두 개 정도가 고작이다. 인형을 좋아하지만 부드러운 재질의 크기가 넉넉한 인형은 대개 비싸서, 다이소가 인형을 만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이젠 두서너 개를 사고 나니 선뜻 사질 못한다. 드뷔시나 라흐마니노프의 악보집을 사고 싶지만, 어차피 못 칠 걸 알기에 포기한 지 5년이 넘었다. 내가 고민하지 않고 산 건, 누군가에게 줄 것들과 한 잔에 1500원 하는 커피 말곤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지 않으면, 더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실제로 그랬고, 어떨 때는 맞는 말이었을 거다. 그래서 뭐든 선뜻 사지 못했다. 내가 돈을 벌지 못할 학생일 적엔 돈이 없어서 그랬다. 제대로 용돈을 받지 않았기에 명절이나 일이 있을 때 크게 받은 돈을 모아 매일을 사느라 그런 소소한 것들을 살 수 없었다. 내가 욕심부리지 않아야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었고 친구들을 만났을 때 더 걱정 없이 놀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학비를 모아야 했다. 거기다 학부와 전혀 다른 과로 대학원을 가려면 장학금이니, 그 외의 지원 따위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야 해서 나 혼자 모으기엔 벅찰 만큼 아주 많은 돈을 모아야 했다.


장르 변환 없이 대학원을 간 덕분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모아둔 돈이 모두 쌓였을 땐, 집에 쌓인 빚을 갚았다. 그러고도 돈이 남았지만 난 결국 그 돈을 쓰지 못했다. 우울증인 줄도 모르고 우울을 앓아서 어떤 것도 갖고 싶지 않았고, 하고 싶지 않았고, 먹고 싶지도 않았다. 또 그 무렵엔 몸의 어느 한구석도 멀쩡한 곳이 없던 탓에 병원비로 얼마를 더 쓰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신경 쓰였다. 모아둔 돈은 있지만, 나는 이제 돈을 안 벌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주제넘게 먹고 싶은 걸 먹으면 안 되니까. 갖고 싶은 건 먼 미래 언젠가 편해지면 사야겠다. 취직하면, 그때나 기념으로 하나. 그때, 나중에, 언젠가.


항상 그런 이유가 많았다. 참는 게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 익숙했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일을 해도, 집에서 몇 개씩 외주를 받아 돈을 벌면서도 갖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망설여졌다. 내가 그래도 될까 하는 빌어먹을 마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옷 한 벌, 과자 하나, 책 한 권 그리고 케이크 한 조각.


날 위해 내가 먹고 싶은 케이크 한 조각을 사 먹는 건 갖고 싶은 책 한 권과 같았다. 외출하지 않으면 집에서는 1500원짜리 커피 한 잔조차 편히 사 먹지 못했기에 그 케이크 한 조각은 너무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고, 결국 두 달이 넘게 지난 지금도 여전히 먹지 못했다. 여전히 케이크가 먹고 싶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니까. 이런 생각을 해서 괜히 집착하는 것이려니 하며 먹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막연히 후회했다. 내가 좀 더 날 위해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평소에 날 위하며 살았더라면 고작 케이크 한 조각쯤은 진즉에 먹었을 텐데. 참는 데 익숙해지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이렇게 우울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며, 언젠가로 미뤄둔 모든 것들을 후회했다.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여행을 가고 싶었던 것, 남들처럼 대학생일 때 해외여행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것,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고 싶었던 그 나라에 가볼걸. 티켓팅 날짜까지 모두 알았지만 한 번도 예약하지 못한, 정말 좋아하는 밴드의 내한 공연 한 번 정도는 가볼걸. 마음에 들었던 핸드메이드 반지 하나만 주문해서 사볼걸. 그런 것들.


당장 내일부터라도 그것들을 즐기며 살면 된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나는 여전히 외주나 받는 프리랜서고, 뭘 할지 모르겠는 취준생이고, 그런 주제에 이력서만 넣으면 불안장애에 잠을 못 자는 우울증 환자라서. 언제 제대로 돈을 벌게 될 수 있을지 모를 무지렁이라서 그럴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리 한쪽에선 외주로 남들 월급만큼은 벌면서 왜 난리냐며 날 탓하고 있다. 다 알면서도 왜인지 날 위해 살아간다는 건 아직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만 같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 케이크 한 조각을 먹을 수가 없다. 고작 그게 너무나도 낯설어서. 하지 않는 게 좋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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