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병원 근처 작은 호텔 방에 누웠다. 익숙하지 않은 베개와 천장의 무늬, 바깥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엘리베이터가 층을 오르내릴 때마다 낮게 울리는 금속성의 숨 같은 떨림. 그 모든 소리가 천천히 방 안을 돌았다. 예전엔 이런 공간에 혼자 있었지. 검사 결과를 들을 때도, 수술 날짜를 정할 때도, 병실 문을 밀고 들어가 의사의 눈빛을 읽을 때도—그땐 혼자였고, 혼자인 편이 더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무너지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도 될 자유,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옆에는 아내가 누워 있었고, 아이가 작은 손을 말아 쥔 채 달콤한 잠 속에서 아주 천천히 호흡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그 작은 배가 오르내리는 걸 지켜보았다. 손바닥만 한 가슴, 쌀알처럼 작던 태동이 지금은 작은 가슴 위에서 파도처럼 일고 있었다. 저 아이는 모른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내일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두려움을 안고 이 침대에 누웠는지. 하지만 아이가 모른다는 사실이 어쩐지 나를 살렸다. 누군가가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안에서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기는 것 같았다.
아침이 오고, 병원으로 향했다.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차가운 공기와 소독약 냄새가 얼굴에 닿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었고, 복도 위 형광등은 조금씩 깜빡이며 긴 하루의 리듬을 예고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접수를 했다. 내 손이 조금 떨리더라. 아내는 내 옆에서 미지근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아이는 고개를 젖히며 높은 천장을 바라보거나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 모든 게 희고 부드러우며 이 세상이 아픈 곳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얼굴을 하고서.
검사를 받으려면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 검사받을 사람의 수에 따라 언제 불릴지 모르는 방식이었으니까. 누군가는 반나절을, 누군가는 하루를 꼬박 기다린다고 했다. 다른 병원 다닐 때는, 검사를 받고 이 주 뒤에 다시 올라와 결과를 듣곤 했었다. 서울과 사천을 오가며 마음을 조이고 풀었다가 다시 조이는 일을 반복했었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달랐다. 의사가 조용히 말했다.
“이 날짜에 오시면 검사하고, 그날 결과까지 듣고 바로 돌아가실 수 있게 할게요.”
짧은 말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의 무게는 결코 작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삶의 무게를 조금 들어준다는 것, 그것을 은혜처럼 내세우지 않고 그저 당연한 듯 건네는 배려. 그 배려가 고마워서, 그리고 어쩐지 미안해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게 들이마셨다. 아주 작은 온기가 가슴에 스며들었다.
우리는 두 시간을 기다렸고,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렸다가, 결과를 들었다.
병원 예약을 잡는 것은 힘들다. 이 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언제 끝날지에 대한 것뿐이 아니다. 예약을 잡기 위해 다시 창구로 가는 것부터 고되다. 세 명씩 들어갈 수 있었고 기다리는 시간은 다시 한 시간. 그 시간이 지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그즈음, 내 옆으로 한 여성이 다가와 앉았다. 나보다 약간 더 나이가 많아 보였고, 눈가에는 피곤이 비친 흔적이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수술 예약하고 싶은데요.”
직원이 고개를 들어 조용히 대답했다.
“수술 예약은 지금부터 1년 치 예약이 꽉 찼습니다. 언제가 괜찮으시겠어요?”
1년. 병원에서 듣는 1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숫자일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1년은 살아야 하는 시간, 버텨야 하는 계절, 계속 숨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하루들이다.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보라매병원으로 갈게요. 의뢰서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직원이 다시 말했다.
“큰 병원에서 작은 병원으로 가는 경우, 의뢰서가 나가지 않습니다.”
그 순간, 말은 조용했지만 벽에 손바닥을 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벽조차 없었고 단지 허공이었다. 문을 열어볼 기회, 기대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애초에 길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 그녀는 그렇게 단념해야 했다.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용해졌다. 가방끈을 쥔 손가락이 아주 조금 떨렸고, 나는 그 떨림을 보았다. 분노가 아니었고 절망도 아니었다. 버티는 손이었다. 그리고 1년 후로 예약을 잡고 돌아갔다.
눈을 감고 진료실 때의 일을 떠올렸다.
진료실 문 앞에서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아이는 내 품에서 잠들었다 깨다를 반복했고, 아내는 아이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창가 너머를 보니 햇빛이 흐리고, 나무들은 잎을 흔들며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아플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한 곳, 병원은 항상 그 질문에 답을 묻는 공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검사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가능한 부드러운 단어들을 골라 말했지만, 결국 말의 결은 같았다.
조금 더 준비해야 하고, 조금 더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내는 손끝을 꼭 잡았다.
아이가 내 품에서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는데, 그 작은 호흡이 유리창에 아주 작은 성에처럼 닿았다 사라졌다.
아내와 나는 아이를 안고 조심스럽게 차에 타서, 사천으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서울의 건물들이 멀어지고, 고속도로가 길게 이어졌다. 처음엔 말이 없었고,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 엔진 소리와 바람이 차창을 때리는 소리만이 우리를 따라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내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다음부터 병원은 이렇게 오자 1박 2일로. 다 같이.”
그 말이 어쩐지 눈물처럼 느껴졌다. 묵직하고 따뜻하고, 가볍게 부서지지 않는 말.
나는 작게 웃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잠깐의 닿음이 우리가 서로에게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말해주었으니까.
아이는 잘 울다가, 잘 잠들었다.
그게 어린 생명의 리듬이고, 오늘을 살아낸 증거였다.
아내는 종종 백미러에 비친 내 눈동자를 한 번 보고, 다시 길을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아이가 잠들었는지를 매번 확인하던 것처럼.
희망이란 건 때로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이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진단서를 든 손이 가벼울 수 없고, 앞날이 투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돌아갈 곳이 있었다.
집에 도착해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조용히 불을 껐다.
그제야 가슴속에 고여 있던 문장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아내는 작은 한숨을 쉬었고 나는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오늘의 모든 장면이 천천히 가라앉으며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았다. 병원 로비의 의자, 수술 예약이 안 된 여성의 손, 복도에 서 있던 사람들의 어깨, 스테인리스에 비친 내 얼굴.
사람은 이렇게 산다.
아파도, 무서워도, 불안해도.
누군가는 가방끈을 쥐고 있고, 누군가는 아이를 안고 있고, 누군가는 형광등 아래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희망과 체념, 사랑과 두려움이 한 줄로 얽혀 느리게 흘러간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때로 단지 “버티고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오늘 느낀 모든 감정과 장면을 이렇게 써두는 이유는,
언젠가 내가 잊을까 봐서가 아니라,
내가 견뎠다는 사실을 남겨 두고 싶어서다.
오늘도 나는 기다렸고, 걸었고, 돌아왔다.
그리고 숨을 쉬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