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오늘을 버티라고 말하는 법
상상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기 바란다. 지금 이 마음이, 이 상황이, 이 고통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결국은 지나가는 것들이다. 우연은 인연으로, 인연은 운명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지금 너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이 단지 무의미한 우연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그것들이 서로를 이끌어 하나의 방향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고통을 함부로 규정하지 말자. 어쩌면 이 모든 것도, 아주 멀리서부터 너를 향해 오던 운명의 조각일지 모르니까.
노자는 말했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를 말하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를 말하며, 평안한 사람은 현재를 말한다고.
나는 여전히 과거를 붙잡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그 말의 의미를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평안하지 못한 날이 계속된다고 해서, 그것이 평안을 향한 가능성마저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어쩌면 평안은 완전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 속에서도 잠시 머무는 어떤 순간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이 순간처럼 말이다.
화공이 지나친 욕심으로 화폭에 너무 많은 색을 얹으면 결국 검게 물든다고 하지.
마음 또한 그렇다. 너무 많은 생각, 너무 많은 감정, 너무 많은 후회와 걱정이 뒤섞여 결국 어둡게 번져버린다. 무언가를 잘해보려는 마음,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도 버텨야 한다는 강박이 결국 나를 더 무겁게 만든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덜어내자. 욕심을 비워내듯, 슬픔도, 불안도, 잠시 내려놓아보자.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숨을 쉬기 위한 일이다. 버텨내는 법은 때로 버리는 법 속에 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세상의 단순한 것들로 돌아가자. 산에 올라 누워보자.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느끼고, 물이 흐르면 그 소리를 듣고, 하늘 위를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산과 물과 땅이 그러하듯, 너 역시 우주의 일부다. 이 세계 속의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지금도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너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자격이 있다. 세상에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네가 여기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네가 스스로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존재의 근거다. 살아 있다는 건, 단지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가끔 나는 내 안의 나에게 묻는다.
“지금의 너는 어떤 모습이니.”
솔직히 대답을 모를 때가 많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래도 그 안에서 조금씩 배운다. 세상이 기억하는 위대한 사람들도 결국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받아들인 것을 세상에 내어놓았을 뿐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줄 것도 없고, 내 안에 쌓이지 않았다면 나눌 것도 없다. 그러니 지금의 혼란도, 너의 실패도, 모두 삶을 배우는 과정이라 믿자. 모든 걸 다 잃은 것 같을 때조차, 그 속에는 분명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사이, 아주 짧은 틈에 삶이 있다. 그 짧은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고, 변하고, 살아남는다. 지금 너의 숨이 곧 너의 생(삶)이다.
삶에 있어서 진짜 질문은 단 하나뿐이다.
“삶은 정말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나머지는 모두 그 질문을 둘러싼 세부사항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여전히 망설인다. 어떤 날엔 살고 싶고, 어떤 날엔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글을 쓰고 있다. 그건 어쩌면 아주 미세한 희망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기에 묻는 것이고, 여전히 묻고 있기에 살아 있는 것이다.
한때 나는 내 세상이 동화 같기를 바랐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세계.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암과 종양으로 인해 너무 아파서 울부짖던 날들이 있었고, 오늘의 죽음이 나의 것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겼던 적도 있었다.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아픔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그래도 그 시절엔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지금은 살아 있음이 고통이 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그 안의 작은 빛 하나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세상에는 시련을 이겨내는 강한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약한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오늘을 버티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지치고,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할 여유조차 없을 때가 있다.
그건 냉정함이 아니라 피로다. 그저 나의 하루를 살아내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궁지로 몰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 순간의 사람은 본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단지 지쳐서 힘을 다한 모습일 뿐이다.
그들에게 더 내놓으라 말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
그러니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하자.
모두가 하루를 버티고 있으니까.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오늘을, 내일을, 또 그다음 날을. 끝없이, 그리고 조용히. 우리는 내일이 무너질까 전전긍긍하면서도 여전히 내일을 맞는다.
그게 삶이다. 살아남기 위한, 살아내기 위한 삶. 그리고 그 속에서도 우리는 작고 미약한 행복을 찾는다.
따뜻한 햇살 한 줌, 바람의 냄새, 차 한 잔의 온도, 누군가의 안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저녁빛. 나를 향해 웃음 짓는 아내와 아이의 얼굴.
그런 사소한 것들이 하루를 버티게 한다. 삶은 그런 것들의 합이다. 크게 웃지 않아도 되고,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숨 쉬고 있는 것, 그것이 삶의 전부다.
삶은 완벽하지 않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답다.
너는 흔들려도 괜찮고, 지쳐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다.
그건 네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기억하자.
너는 지금 이곳에 서 있을 자격이 있다.
네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