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우리 집

by 네로

내 몸은 오래전부터 하나의 집이었다. 아침이면 숨결에 맞춰 창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 같았고, 밤에는 조용한 어둠이 방 안을 감싸며 하루를 정리하게 해주는, 익숙하고 단정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 집을 의식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었고, 걸음도, 생각도, 일상도 무리 없이 그 안에서 흘러갔다. 그러나 어느 날, 초대하지 않은 세입자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문턱 근처에서 조용히 웅크린 작은 그림자 같아 금방 떠날 것이라 믿었지만, 그는 서서히 집 안을 돌아다니며 방 하나, 또 하나를 점유하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는 날이면 집은 이유 없이 삐걱거렸고, 어떤 구석은 마치 빛이 닿지 않아 숨이 죽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집이 어질러지기 시작하자 나는 결국 이 집을 손봐야 했다. 검사실에서 찍은 MRI와 pet-ct는 천장을 뜯어 내부 배선과 골조를 들여다보는 점검 작업처럼 보였고, 의사들은 구조기술사들처럼 모니터에 비친 작은 점과 선들을 확대하며 설계도를 검토하듯 수리해야 할 부분을 찾아냈다. 수술이 결정된 날은 마치 집 전체의 전원을 내려 대공사를 준비하는 날과 비슷했다. 수술실의 강한 빛 아래에서 기술자처럼 정교한 손길들이 오가며, 망가진 구조를 드러내고 정리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되돌리는 과정은 두렵고 불가피했지만, 집을 다시 살아 있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수술 뒤 이어진 항암치료는 또 다른 형태의 청소였다. 몸속 깊은 곳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먼지나 곰팡이 같은 잔해들을 닦아내기 위해 집안 곳곳을 강하게 소독하는 일과도 비슷했다. 청소가 강할수록 냄새도 독하고 손끝이 쓰라린 것처럼, 항암이 강할수록 내 일상은 흔들렸고, 입맛이 사라지거나 머리카락이 빠지는 변화는 마치 방 하나가 잠시 폐쇄된 것처럼 느껴졌다. 손끝이 저릿한 날이면 집 전체에 과한 소독약을 뿌려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된 것 같은 답답함이 찾아왔다.


재활은 다시 작은 생활용품을 제자리에 두는 작업처럼 조용하고 반복적이었지만 중요한 과정이었다. 걷는 연습은 오래된 문의 경첩에 다시 기름칠하듯 관절을 움직이게 했고, 약해진 팔로 물컵 하나를 드는 일은 흔들리는 선반 위에 물건을 조심히 올려놓는 일처럼 신중을 요구했다. 그렇게 몸의 작은 움직임을 하나씩 회복하는 일은 집을 살 만한 공간으로 되돌리려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복구 작업이었다.


통증 관리와 치료는 집 안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란을 다루는 과정과도 닮아 있었다. 통증 조절 주사는 과열된 히터를 잠시 식히듯 나를 가라앉혔고, 새벽마다 찾아오는 불면은 밤이면 잠잠해야 할 집에서 갑자기 배관이 덜컥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불안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지나며 나는 어느 순간, 이 집이 소란스러운 것은 병 때문이지만, 그 소란 속에서도 집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존재는 분명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입자는 때때로 집의 큰 공간을 차지해 버렸지만, 나는 남은 공간을 정리하며 그 안에서 살아갈 길을 찾아냈다. 오늘은 작은 서랍 하나를 정리하고, 내일은 창틀의 먼지 조금을 닦아내며, 조금씩 이 집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정리들이 쌓일수록 나는 이 집의 주인이 여전히 나임을 더 깊이 실감했다.


언젠가 이 집이 완전히 고요를 되찾을지, 아니면 평생 어딘가에서 작고 끈질기게 소란을 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나는 이 집을 포기하지 않았고, 병이라는 세입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도 매일 내가 살아 있다는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소란스러운 집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시 정리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