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이었습니다. 기온은 10도쯤이었고 햇살은 따스했으며, 머리를 누르던 압박도 없었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고, 받으려면 세 발자국쯤 일어나야 했습니다. 아니면 아내에게 부탁해야 했기에 잠시 망설이는 사이 전화는 끊어졌고, 그래 조금 더 햇살을 받자고 생각하던 찰나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일어나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너머에서 신춘문예 기자라는 말이 들린 뒤 제가 보낸 수필이 당선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 말은 기쁨보다 먼저 놀라움으로 다가왔고, 곧 아주 조용한 안도감으로 제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저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살아가며 겪은 일들을 아무 말 없이 흘려보내기엔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그저 조용히 적어두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는 목표가 아니라 습관이 되었고, 욕심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삶에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택이라 부를 수 없고, 의미를 붙이기엔 너무 늦어버린 시간들이 있다는 걸 저는 살아오며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런 순간들 앞에서 제가 어떤 태도로 남아 있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 짧은 문장 하나라도 붙잡으려 애써왔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문장들은 시간을 구해주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곁에 머물러 주었습니다.
이 글 역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쓰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제가 오늘까지 어떻게 살아오고 있는지를, 저 스스로에게 숨김없이 확인해보고 싶었던 기록에 가깝습니다. 누군가가 그 기록을 읽고 각자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은 제 몫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저는 유난히 많은 이별을 겪었습니다. 가족을 포함해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이유 없이 하늘을 오래 바라보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며 하루를 넘기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다음 카페 ‘암과 싸우는 사람들’을 통해 저와 비슷한 하루를 살아내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날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외롭고, 가능하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조금 더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그렇게 버텨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삶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쓸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저에게 잘해보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다시 내일을 살아볼 수 있게 해주는 작은 불빛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12월의 완벽한 어느 날,
네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