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수필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소설가 등단 도전기

by 네로

*표지의 사진은 AI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조금 낯간지럽지만, 나는 수필가가 되었다. 초보 수필가다.

수필은 사건보다는 순간을, 결말보다는 여운을 붙잡는 글이었다. 한 문장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 멈춰 서는 법을 먼저 배우는 글쓰기였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자주 같은 지점에서 멈췄다. 장면은 있었지만 이야기는 나아가지 않았고, 문장은 살아 있었지만 인물은 걷지 않았다.


그래도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 필명은 네로(路)다. 브런치에서는 한글과 영어만 입력할 수 있어 네로로 적고 있지만, 본래 뜻은 ‘네(너의) 길(路)’이다. 누군가의 길 위에 남은 말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에 길을 내고 싶은 마음에서 붙인 이름이다.


수필은 대개 내 이야기로 시작해 내 이야기로 끝난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그들이 등장인물이 되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어졌다.


과학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지만, 나를 두고 떠난 그리운 사람들이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느껴진 순간들이 있었다. 그 감각을 외면하지 않고 싶었다.


우선의 목표는 소설 쓰기다.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등단이다.

막연한 꿈은 아니다. 노리는 신인문학상이 몇 개 있고, 그중 가장 가까운 목표는 오영수신인문학상이다. 일정도 알고 있고, 분량도 알고 있으며, 요구되는 완성도 역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문제는 그 모든 조건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아직 ‘소설을 쓰는 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브런치북은 그 간극에 대한 기록이다. 플롯을 먼저 짜보기도 했고, 아무 계획 없이 한 장면부터 써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구조가 나를 끌고 갔고, 어떤 날은 문장이 이야기를 배신했다. 수필가로서 익숙했던 감각들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소설 쓰기 강의가 아니다.

정답을 말하려는 글도 아니다. 대신, 수필만 쓰던 사람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겪는 시행착오와 실패, 멈춤과 다시 쓰기를 숨기지 않고 적어두려 한다.


아직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등단하지도 않았고, 결과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더 이상 수필의 방식으로만은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지금은 소설을 쓰는 법을 배우기보다, 소설을 쓰는 몸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이 기록이 끝날 때쯤에도 나는 여전히 미등단자일지 모른다. 소설가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 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어디에서 멈췄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분명해져 있기를 바란다.

그 출발점으로, 이 브런치북을 열었다.

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