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플롯을 버리기로 한 적은 없다. 다만, 줄여야한다고 생각해 왔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정밀한 플롯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알게 된 건, 초보 소설가에게 플롯은 이야기를 완성하게 하기보다 이야기를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질문을 바꾸었다. 이 소설에 정말 필요한 구조는 무엇인가. 없어도 되는 건 무엇인가. 그 질문 끝에 남은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1. 결말은 정하지 않는다
결말을 알면 안심이 되지만, 그 안심은 문장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인물이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곳을, 작가가 먼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문장을 쓰면, 인물은 이미 결과를 향해 걸어가는 존재가 된다.
결말은 방향이 아니라 압력이 된다. 그래서 나는 결말을 미뤄둔다. 다만, 결말이 없다는 불안을 견디기 위해 다음 한 가지만 남겨둔다.
2. 반드시 지나가야 할 지점 하나만 정한다
이야기에는 반드시 한 번은 통과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사건일 수도 있고, 선택일 수도 있고, 인물이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지점 하나만 표시해 둔다. 언제, 어떻게 도착할지는 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이야기가 그 지점을 지나가지 않으면 소설이 될 수 없다는 확신만 남겨둔다. 이 지점은 목표가 아니라 통과 지점이다. 도착하면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3. 인물이 틀릴 수 있는 선택을 하나 남겨둔다(너무 완벽한 인물을 만들지 말기)
초보 소설가가 가장 자주 하는 실수는, 인물을 너무 일찍 올바른 선택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인물이 틀릴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나 남겨둔다. 왜 틀렸는지는 나중에 알게 해도 된다.
지금은 그 선택이 필요하다고 믿게만 한다. 이 선택 덕분에 인물은 앞으로 움직인다. 옳은 선택은 이야기를 정리하지만, 틀린 선택은 이야기를 발생시킨다.
4. 설명하지 않을 것을 하나 정한다
소설을 시작할 때, ‘이 이야기에 대해 끝까지 설명하지 않을 것’을 하나 정한다. 관계의 이유일 수도 있고, 감정의 출처일 수도 있다. 설명하지 않겠다고 정한 순간, 문장은 행동을 찾기 시작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인물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때부터 문장은 다시 살아난다.
5. 플롯은 난간으로만 사용한다
이제 나에게 플롯은 설계도가 아니다. 문장이 길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난간이다. 문장이 위험해질 때만 잡는다. 문장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는, 플롯은 뒤로 물러선다.
나는 이제 이렇게 쓴다. 장면을 쓰고, 멈추고, 이 장면이 여전히 그 지점을 향하고 있는지만 확인한다. 그 외의 것은 문장에게 맡긴다.
초보 소설가를 위한 최소한의 플롯 요약
결말은 정하지 않는다
반드시 지나가야 할 지점 하나만 정한다
인물이 틀릴 수 있는 선택을 남겨둔다
끝까지 설명하지 않을 것을 하나 정한다
플롯은 ‘지도’가 아니라 ‘난간’으로 쓴다
이 다섯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방식은 소설을 잘 쓰게 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소설을 끝까지 쓰게는 해준다. 초보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완성도보다 완주라고 생각한다.
이 브런치북을 시작할 때의 나는 수필가였다. 지금도 나는 아직 소설가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소설을 쓰는 몸으로는 분명히 이동하고 생각한다. 이 최소한의 플롯은, 그 이동을 가능하게 만든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