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스물두 번째 봄, 4월 3일

규담이의 길을 찾는 시간에,

by 네로

규담아,

스물두 번째 생일을 정말 축하해!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아질 거야. 학교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앞으로 뭘 할 건지’ 자꾸 물어오겠지. 하지만 아빠는 너에게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 직업이라는 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거든. 그러니 너 스스로가 즐겁고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정말 중요해.


아빠도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어.

어느 날, 두 명의 교수님이 따로 불러서 각자의 실험실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하셨지.

한 분은 화훼 전공 교수님이셨고, 다른 분은 식물병 전공 교수님이셨어.

화훼 쪽은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성적도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식물병 교수님은 “실험하러 와~” 하고 무심하게 한마디 하셨지.

그 말에 끌려 아빠는 식물병 실험실로 들어갔단다.


아빠는 그곳에서 식물병원균을 식물에서 분리해 내고, 다시 건강한 식물에 접종해서 병을 내보는 실험을 배웠어. 듣기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병을 유발하는 그 과정을 눈으로 보고, 직접 손으로 다뤄보는 일이 정말 재미있었어. 그래서 학교에서,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댁 딸기농장에서도 병든 식물만 보면 멈춰 서서 병반을 채취했단다. 마치 작은 탐정이 된 기분이었지.

아빠가 죽인 토마토가 꿈에 나와서 덩굴로 아빠를 조르던 꿈까지 꿨었단다.


그 시절 대학교에는 이런 말이 있었어. 아마 지금도 있을지도 몰라.

“대학생이 큰 죄를 지으면 대학원생이 된다.”

아빠는, 아마 그 죄를 지었나 봐. 농협 입사 준비를 하며 금융자격증도 따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결국 실험하는 게 더 재미있고 더 아빠 같다고 느껴졌거든. 그 결과로 농촌진흥청 10개월 계약직과 농협 6급 정규직 두 곳을 합격하고 둘 중에서 고민하다가, 정규직보다 실험이 있는 삶을 택했단다.

선택의 결과가 항상 정답은 아니겠지만, 그 선택이 나를 후회 없는 방향으로 이끌었다고는 말할 수 있어.


규담아, 아빠는 네가 뭔가를 잘하면 참 좋겠지만, 그보다도 더 바라는 건 네가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해 보는 거야. 잘하는 건 해보다 보면 생기는 거고, 잘하는 게 아니라도 좋아하는 걸 찾는 게 훨씬 더 중요할 때가 많단다. 실패해도 괜찮고, 돌아가도 괜찮아. 중요한 건 너 자신이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며 길을 찾아가는 거야.


규담아,

너도 이제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할 나이가 되었겠구나.

그 과정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남들이 정해준 길이 아니라

네가 진심으로 ‘이거 재밌다’고 느끼는 걸 따라가는 거야.


가끔은 그런 길이 안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보장된 미래가 아니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인생은 어떤 선택이 ‘정답’이라서 가치 있는 게 아니라

그 선택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


진로는 직업만을 뜻하지 않아.

네가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정하는 과정이기도 해.

다급해지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천천히, 하나씩 해보면 돼.


아빠는 너라면 분명 네 마음에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즐거움’이 네 삶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

네가 잘하더라도 즐겁지 않다면, 그것을 업(業)으로 삼는다면 아빠는 조금 슬플 것 같아.


아빠는 너라면 분명 네 마음에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즐거움이 네 삶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


세상이 너를 데려가는 그 시간,

가끔은 아빠가 해줬던 이 이야기가

작은 나침반이 되었으면 좋겠어.


너의 일이 너의 즐거움이 되기를,

그리고 너의 삶이 너다운 색으로 물들기를


아빠는 언제나 바라보고 응원하고 있을게.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