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스물한 번째 봄, 4월 3일

낯설지만 괜찮았던, 스물한 살

by 네로

규담아,

스물한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마 지금쯤은 거울 속의 네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조금은 든든하기도 할 나이겠지.


아빠는 스물한 살에 일본에서 유학을 했단다.

말이 ‘유학’이지 사실은 학교 간의 교환 프로그램으로 1년간 일본에서 강의를 들으러 간 것이었어.

일본어능력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고, 운이 좋게 순위 안에 들어서 갈 수 있었지.


일본에 도착해서는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어.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지.

간단한 아르바이트 하나를 하더라도 일본인 보증인이 필요했고, 서툰 말투 하나에 사람들이 잠깐 멈칫하던 그 순간들이 참 생생하구나.


그래도 아빠는 그 낯설고 먼 곳에서

아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아가려 애썼어.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앙케트 조사에는 매번 참여했지.

관광지 체험을 하고, 어떤 점이 좋았고, 부족했는지를 적어 내면

사례금도 받고, 보는 눈이 달라지고 말이야.


그중 기억에 남는 체험 중 하나는 ‘우동 만들기’였어.

밀가루 반죽을 발로 꾹꾹 밟아 만드는 우동.

그 쫄깃쫄깃한 면발의 식감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

한국에 돌아와서 만들어봤지만,

그때의 그 맛은 다시 나지 않더라.

아마도 반죽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어떤 레시피가 들어갔겠지.


그리고, 아빠는 그곳에서 엄마에게 매일 편지를 썼단다. 하루에 한 통씩.

그날 있었던 일, 본 풍경, 먹은 음식, 벚꽃이 피던 거리의 향기,

눈이 허리까지 쌓였던 겨울의 적막,

진도 6이 넘는 지진의 흔들림까지.

모두 편지지 위에 하나하나 눌러 적었어.


그 시절에는 스카이프 같은 영상통화도 있었지만

우리는 편지를 택했어.

편지는 기다림이 있었고,

그 기다림 안에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었으니까.


주소를 쓸 때마다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을 한자로 정성껏 적었지.

그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그 주소는

한 자 한 자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어.


아! 그리고 어느 날,

유학 생활 5개월이 지나고 나서였을까?

일본인 친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고,

어느 날, 새로운 중국인 유학생이 입학하게 되었지.

그 친구를 보고 내가 “쟤는 아무리 봐도 외국인 같은데?” 하고 말했는데,

곁에 있던 일본 친구가 웃으며 말했단다.

“너도 외국인이잖아, 스!” (お前も外国人だろ、ス)

아빠의 이름은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무척 어려워서 끝에 수만 스(ス)~로 발음했단다.

그 말이 어찌나 부끄럽고, 또 우습고, 또 깨달음을 주던지.


그 순간 깨달았어.

어디에 있어도, 누구 사이에서도

나는 ‘나’이고, 언제나 조금은 ‘외부인’ 일 수 있다는 걸.

그걸 인정하면서부터

사람들과 더 자연스럽게 마음을 나눌 수 있었어.

익숙해지려고 애쓰기보다

그 낯섦을 안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달까.


규담아,

너도 언젠가는 낯선 곳에서,

낯선 얼굴들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새롭게 만나게 될 거야.

그때 누군가 너에게 “너도 외국인이야”라고 말할지 몰라.

하지만 그 말 안에는

네가 ‘그 안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을 거야.


스물한 살의 너도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의 도전에, 다른이들의 판단은 필요치않아.


편지를 마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누군가를 향한 마음,

너를 살아가게 하는 감정들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해.

그건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신호야.

늘 너의 마음을 응원한단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