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열아홉 번째 봄, 4월 3일

by 네로

열아홉 번째 생일에, 규담이에게


규담아,

열아홉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스스로도 어렴풋이 느낄 거야.

이제 정말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걸.

언제까지고 안방 옆 작은 방에서 엄마랑 마주 보며 살 순 없다는 걸 말이야.


세상은 열아홉 살에 대해 “이제 어른”이라고 말하지만,

네 마음은 여전히 미성숙한 부분이 많다고 느낄 수도 있어.

그건 당연한 일이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서툴고, 더 유연하단다.


아빠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

“규담이가 면허부터 먼저 땄으면 좋겠다.”

생일이 4월이니까, 방학에 도전하면 딱 좋을 거야.

물론, 운전이 처음엔 겁이 나고 헷갈릴 수도 있어.

하지만 아빠는 널 믿어.

너는 익숙해지는 법을 아는 아이니까.


그리고 말이야,

가능하다면 너도 네 두 다리로 세상을 한번 돌아봤으면 해.

아빠는 열아홉에 자아를 찾겠다며 여행을 떠났었어.

집에는 “간데이” 라는 쪽지만 남기고서 말이야.

경상남도 함양에서 시작해서, 진주를 지나,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걸어갔었지.


돈은 없었고, 계획도 없었고,

가다가 공사장에서 밥을 얻어먹고,

그 대신에 공사현장 중 나오는 돌덩이를 외발 리어카에 싣고 옮기기도 했어.


물이 떨어져 쓰러질 듯 걷고 있을 때,

화물차 기사님이 내민 겨우살이를 우려 만든 물 한 병은

그때의 나에게 세상 전부 같았단다.


그렇게 삼일 사일을 걸어서

드디어 땅끝마을에 도착했을 땐 오후 세 시쯤이었어.

해남에서부터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형, 누나들이 벽에다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곤 했단다.


아빠는 땅끝마을에 도착해서 선착장 근처에 있던 해물 칼국수집을

바깥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곳 이모님이 그러셨어.

“그냥 들어와요. 지금 한가하니까. 돈 안 줘도 돼.”

그 말은 그냥 한 끼를 넘긴다는 의미가 아니었어.

그건 내가 세상으로부터 ‘환대’를 받은 첫 순간이었단다.


그 여행에서 자아는 찾지 못했어.

대신 바짝 그을린 살갗이 벗겨졌고,

내 안의 조금 다른 무언가가 생겨났던 것 같아.

나를 만든 건, 결국 ‘그 시간을 걸은 나 자신’이었지.


규담아,

너도 너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걸어보면 좋겠어.

꼭 땅끝까지 가지 않아도 돼.

하지만 익숙한 집, 편안한 방,

그 익숙한 거리에서 한 걸음쯤은 멀어져 봤으면 해.

세상이 넓다는 걸,

그리고 사람의 친절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되길 바라.


길 위에서 만난 타인의 온기가

너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드는지,

그건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어.


혹시 너도 자아를 찾겠다며 떠났다가

자아를 못 찾고 돌아올지도 모르지.

괜찮아.

그럼에도 분명 네 안에 무언가가 생겨나 있을 거야.

그건 아빠가 장담해.


이제 곧 너는 정말로 ‘떠날’ 거야.

집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마음의 간격도 조심스럽게 벌어지겠지.

하지만 너는 늘 아빠의 자랑이고,

아빠는 항상 너의 응원자야.


떠나되,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지 마렴.


스스로를 믿고, 세상을 걸어보렴.

그리고 너만의 속도로, 너만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가렴.


사랑한다, 규담아.

오늘, 너의 열아홉 번째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