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벽시계가 한 번 울릴 때마다, 방 안의 공기가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오후 네 시. 해는 아직 높은데도 겨울빛은 얇고 차가웠다. 나는 아버지 방 문턱에 낮게 앉아 있었다. 어제와 다를 것 하나 없는데, 모든 것이 조금씩 비어 있는 방. 문고리에는 아직도 아버지의 회색 점퍼가 걸려 있었고,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옷자락을 아주 느리게 흔들었다.
바닥에는 아버지 물건들이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검게 윤이 남은 안전화, 뒷굽이 닳아 사선으로 굽은 슬리퍼, 배달표가 꽂힌 지 오래인 달력, 그 옆에는 볼펜이 꽂힌 채 굳어 버린 수첩. 나는 수첩을 펼쳐 보았다. 굵고 짧은 글씨. “진천—적재 04:30 / 하차 11:10 / 점심 X.” 그리고 그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감기 조심.” 아버지가 자기 자신에게 남긴 메모 같았다.
수첩 뒤쪽에는 사탕 두 알이 끼어 있었다. 포장지에 묻은 기름 냄새, 사탕 껍질이 내는 얇은 비닐 소리, 옷장 안 깊숙이 배어 있는 세제와 땀 냄새. 이 모든 냄새와 소리가 한꺼번에 몰려와 코와 귀를 가득 채웠다. 나는 사탕을 꺼내 들었다가, 다시 고이 넣었다. 사탕의 둥근 모양이 내 손바닥의 움푹 팬 곳과 꼭 맞아 들어갔다.
현관문 옆 신발장 위에는 아버지의 키가 있었다. 금속 키링에 작은 축구공 모양 장식이 달려 있었다. 아버지가 웃으며 내게 사 준 장식이었다.
“남자면 축구공 하나쯤은 달고 다녀야지.”
그러고는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던 손. 나는 열쇄를 쥐었다. 손바닥이 시렸다. 열쇄의 찬기가 내 피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때서야, 내가 ‘남겨진 쪽’에 서 있다는 사실이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몸 속 어디를 눌렀다. 떠난 사람의 물건을 정리하는 일, 남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방법으로, 어떤 속도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무릎 위에 수첩과 열쇄와 사탕을 차례로 올려놓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장례식장 냉장고 같은 공기는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날의 냄새가 아직도 코 안쪽에 붙어 있었다. 향 냄새와 소독약 냄새 사이에, 아버지의 기름 냄새가 아주 얇게 깔려 있었다. 벽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고, 그 문구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작은 종이컵에 담긴 미지근한 커피를 마셨다. 설탕을 두 스푼이나 넣었는데도, 커피는 쓰기만 했다.
빈소 안쪽 사진 속 아버지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체사진에서 잘라 낸 얼굴, 뒤 배경이 어둡게 지워져 있는 사진. 사진 속 눈매가 실제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 보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새벽마다 향을 갈았다. 누군가는 “네 아버지는 영웅이란다.”라고 속삭였고, 누군가는 “남은 사람이 힘들지”라고 말했다. 나는 어느 쪽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들 중 어느 것도 내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룻밤을 꼬박 서 있자, 발뒤꿈치가 바닥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새벽 두 시 반. 빈소의 형광등 불빛이 종이꽃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나는 잠깐 복도로 나갔다. 자동판매기 불빛이 유독 밝았다. “따뜻한 라떼.” 버튼을 누르자, 종이컵이 또각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스테인리스 바닥에 떨어지는 커피 방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뜨거운 컵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나는 온기가 손가락 마디에서 멈추는 걸 느꼈다. 그 온기는 손목을 지나 팔꿈치를 넘지 못했다.
너무 피곤해서 눈을 감으면, 표지판처럼 반짝이는 단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상속” “합의” 단어들은 머릿속에서 서로 부딪치며 꺾였다. 단어 사이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비슷한 대역의 소리들이 겹치면, 하나는 꼭 다른 하나를 지워버린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의 소리를 놓쳤다.
남겨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그 질문을 매일 품고 살았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떠나는 건 한순간이지만, 남겨진다는 건 영원히 그 순간 속을 살아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떠난 사람은 아픔을 내려놓을 수 있지만, 남은 사람은 기억을 등에 짊어진 채 걸어야 했다.
낮에는 사람들 틈에 섞여 평범한 얼굴로 웃다가도, 밤이 되면 한숨과 기억 사이를 끝없이 헤맸다. 침대맡 전등을 끄면 천장 위에 잔영처럼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꿈에서도 목소리를 들었고, 꿈에서 깨면 침묵이 나를 덮쳤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사진 속 흐릿한 얼굴 말고는 잡히는 게 없었다. 기억이라는 서랍을 열어봐도,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처럼만, 어머니의 온기를 짐작할 뿐이었다. 내 손을 잡아줬을까. 밤새 이불을 덮어주며 귓가에 속삭였을까. 모두 알 수 없었다.
대신 다른 집에서 본 장면들이 더 선명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부엌에서 친구 어머니가 감자를 깎던 작은 동작. 칼끝에서 돌돌 말리는 껍질, 그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먹던 친구의 표정. 그 사소한 장면이 내겐 낯설고도 서글펐다.
“아, 저게 당연한 거구나.”
그때 깨달았다. 세상에서 누군가에겐 평범한 것들이, 나에겐 평생 손에 닿을 수 없는 풍경일 수도 있다는 걸.
한 번은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께 어머니 이야기를 물었다.
“할아버지, 엄마 손은 어땠어요?”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난로 위 주전자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 아주 낮게, 먼 기억을 꺼내듯 말했다.
“네 어미 손은, 참 따뜻했지.”
그리고는 오래 굳은 손을 무릎 위에서 비비며, 시선을 창밖으로 흘렸다.
“근데 말이다, 따뜻한 손일수록 오래 잡을 수 없더구나.”
그 말은 마음속에 깊이 박혀 쉽게 떠나지 않았다. 따뜻한 것일수록 빨리 사라지는 세상이라니, 왠지 억울했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어린 나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날은 눈발이 흩날리던 초겨울이었다. 전화벨이 울렸고, 이웃의 떨리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빨리... 병원으로 바로 와야겠다.”
병원 복도는 긴 꿈속 같았다. 형광등 불빛이 하얗게 번져 있었고,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명도, 울음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한 겹씩 마모된 종이처럼 무표정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누워 계셨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숨결조차 기계에 의존한 채 미약하게 오갔다. 유리문 밖에서 아버지 얼굴을 보는 동안, 내 손은 손톱이 파고들 만큼 꽉 쥐어져 있었다.
석 달을 버티다 아버지는 떠났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아 한없이 허공만 바라봤다. 아버지의 체온은 사라졌지만, 그 체온이 스며 있던 공간의 냄새만 오래 남았다. 엔진오일 냄새, 세제 냄새, 겨울 바람 냄새, 그리고 땀 냄새. 나는 장례식장 귀퉁이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울음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삼켰다.
“왜 나만 남겨둔 거예요”
아버지를 원망한 건 오래가지 못했다. 머릿속을 지배한 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아빠는 대학을 안 가봐서 어떤 곳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네가 꼭 가서 보고 와라.”
그 약속 하나가 나를 매일 움직였다.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전전하며 하루 종일 대걸레를 붙잡았다. 손끝에 스며드는 세제 냄새, 차가운 바닥, 밤늦게 매장을 닫을 때 퍼져 있던 냉기.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학에 간들 뭐가 달라질까...”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남겨졌다는 건,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계절의 끝자락에, 나는 아버지의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약속은 꼭 지킬게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게요.”
말을 하고 나니 가슴 한가운데 작은 불씨가 켜진 것 같았다. 꺼질 듯 위태롭지만, 그 불씨 하나로 다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남겨진다는 건, 떠난 사람을 잊는 게 아니라 떠난 사람을 품고 살아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발걸음을 떼었다. 떠난 사람을 안고, 남은 자리에서, 아직 오지 않은 봄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