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 같은 나날

by 네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반년이 지났다.

버스는 정각마다 도착했고, 정류장 전광판 숫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바뀌었다. 학교 종은 제때 울렸고, 매점의 호떡은 점심 전엔 늘 동이 났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고 흘렀다. 그런데 내게만 계절이 바뀌지 않았다. 한겨울 한복판에서 시계가 멈춘 듯, 차가운 공기가 가슴속에 얇은 얼음막을 깔아놓고는 녹아주지 않았다.


시내 초입 전봇대 앞에서 발이 멈췄다. 누군가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가며 포개 올린 전단지들이 바람에 들썩였다.


야간 편의점 / 주말 우대 / 성실한 분

분식집 / 가족 같은 분위기 / 시급 9,000

카페 바리스타 / 경력자 우대


손가락으로 한 장, 한 장 모서리를 만져보았지만 지도처럼 펼쳐진 이 종이 위로 내 삶의 길이 그려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전화번호 아래 작은 tear-off 종이를 뜯어 주머니에 넣을 때마다 내 쪽에서 조금씩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화를 걸었고, 몇 군데는 “이미 찼어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어떤 곳은 면접을 보라 했고, 어떤 곳은 시급을 물어보자 “요즘 다들 그 정도죠”라는 말로 끝났다. 다들 그 정도라니—그 ‘그 정도’를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모르는 척을 하는 것 같았다.


눈에 들어온 건 빨간 간판의 고깃집이었다. 문 앞엔 새로 붙인 이벤트 포스터가 바람에 맞춰 들썩거렸다. 시급 만 원.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 쥘 수 있는 숫자는 현실뿐이었다. 나는 문을 밀었다. 기름 냄새와 탄 냄새가 한 번에 밀려왔다. 바닥은 방금 닦았는데도 미끄러웠다. 사장님은 내 얼굴을 한 번 훑더니, “언제부터 할 수 있어?”라고 물었다. “오늘요.” 나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탄탄하게 들리는 것이 낯설었다.


첫날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재료 상자를 옮기고, 테이블을 닦고, 치우지 않고 간 자리를 정리했다. 불판에 눌어붙은 고기는 수세미로 밀어내면, 생각보다 쉽게 사라졌다. 그러나 바닥에 남은 젖은 발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근처에 있는 회사의 단체 회식이 있는 날이면, 바닥은 눈이 아닌 물로 덮였다. 사람들은 “춥다”를 말하며, 발을 한 번도 털지 않았다. 나는 대걸레를 길게 밀었다. 사람들은 서서 먹고, 앉아서 먹고, 웃고 떠들었다. 웃음이 싫지는 않았다. 다만 그 웃음과 내 땀 사이에, 내 대학이 멀고도 가까운 어딘가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느낌이 들었다.


밤 열 시 반, 사장님이 뒷문을 닫는 소리가 나는 순간까지 나는 바닥을 닦았다. 손끝이 쿡쿡 쑤셨고, 손바닥엔 물기와 세제 냄새가 남았다. 초겨울의 밤공기는 기름냄새를 금세 데리고 나갔다. 가게 문을 닫고 나니 밤은 갑자기 더 차가워졌다. 가게 안의 기름 냄새와 소스 냄새가 옷에 잔뜩 배어,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면 내 숨이 낀 김에서도 어렴풋이 그 향이 났다. 머리를 감아도, 감아도 지워지지 않는 냄새—마치 오늘의 피곤이 내일의 어깨까지 따라오는 방식처럼.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낯설 정도로 조용했다. 나는 옷을 벗어 걸고, 화장실 불을 켰다. 거울 속의 나는, 낮의 나보다 두 살쯤 더 늙어 있었다. 물을 틀어 얼굴을 대고, 손등으로 물을 털었다.


책상 위에서 돈을 세었다. 지폐가 손끝에서 바삭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따뜻하지 않았다. ‘등록금’이라는 단어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 올랐지만, 계단은 생각보다 더 길어 보였다. 공책 한편에 작은 칸을 그려 금액을 채웠다. 빈칸은 대답이 없었다. 숫자라는 건 이렇게 냉정한 얼굴이었나. 그 옆에는 대학 이름을 적었다. ‘가능할지도 모른다’의 경계선 위에서 흔들리는 이름. 혹시라도 이쪽에 발을 걸칠 수 있을까 싶어, 말라붙은 잉크로 몇 번이고 덧그렸다. 덧그릴수록 글자는 굵어졌지만, 가능성은 굵어지지 않았다.


창밖에선 진눈깨비가 내렸다. 가로등 아래, 흰 점과 검은 점이 부딪히며 천천히 떨어지는 모습이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만지면 녹고, 두면 사라지고, 쓸어내리면 물로 바뀌는 것들. 오늘 하루도 그랬다. 손바닥으로 붙잡은 것들은 죄다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래도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또 손을 뻗을 것이다. 손이 기억한 동작들은 머리보다 오래간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방식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아르바이트? 어디서 하는데?” 친구였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녀석.

“근처 고깃집”

“시급은?”

“만 원”

“에이, 너무 짜다. 아니면 졸업하고 내려와. 방 하나 비었어. 우리 집 배 과수원 새로 넓혔거든. 일손 모자라. 부모님도 너라면 좋다고 하셨어.”


말끝이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이상하게 더 아팠다.

“고맙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말하고 나서,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침묵이 길어졌다. 친구는 더 재촉하지 않았다. “알았어. 힘들면 언제든”이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엎어놓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방 천장에 붙은 형광등 위로 작은 벌레가 더디게 걸어갔다. 빛줄기 가장자리에서만 비치는 조그만 그림자가 벽을 타고 움직였다. 어쩐지 그 그림자가 나 같았다. 어둠과 빛 사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 불러주면 갈 수 있지만, 불러주지 않아도 결국 어디론가 가야 하는 존재.


친구는 소중하다. 스무 번 넘게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 힘들면 언제든 오라 했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는 결국 ‘타인’이었다. 내 삶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제와 오늘을 함께 견딜 수는 있어도, 내일의 모양까지 바꾸어줄 수는 없었다.


내가 붙잡아야 하는 건 ‘의미’였고, 그 의미는 가족과 닿아 있었다.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의 약속.


‘네가 가서 보고 와라. 아빠는 못 가봤다. 네가 가서, 나중에 네 아들한테 말해줘라. 대학이 어떤 곳인지.’


어릴 적 그 말을 들었을 때, 대학이라는 건 꼭대기에 걸린 투명한 종처럼 보였다. 아주 높은 곳 어디엔가 달려 있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는, 그러나 빛이 나면 온 운동장에 울림을 퍼뜨리는 그런 종. 아버지는 늘 못 가봤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군가의 못 갔던 길을 이어 걷는다는 건 때로 버거웠지만, 그 길을 걷지 않으면 나는 내가 아닐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학교로 향했다. 복도 창문 밖 운동장은 얇은 비막처럼 반짝였다. 체육 선생님이 운동장 출입을 금지시키자 아이들이 유리창에 김을 불며 이름을 썼다 지웠다. 지우개처럼 손등으로 문질러도 완벽히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남았다. 나는 내 이름 대신 아버지의 이름 첫 글자를 써보았다가, 금세 손바닥으로 지웠다. 손바닥엔 이름의 잔광 같은 것이 남았다. 남은 흔적이 싫지 않았다. 지워지는 것도, 남는 것도 그날만큼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수업시간, 선생님의 말은 멀리서 들려왔다. 숫자와 문장과 지도 위 경계선들이 내 귀를 스쳐 갔다. 창밖으로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또 떨어졌다. 진눈깨비. 계절과 계절 사이 어딘가. 눈으로 시작해 비로 끝나는 것. 어느 쪽도 완전히 되지 못한 채 섞여 내려오는 것.


나는 그 사이에 있었다. 비도, 눈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려오고 있었고, 땅에 닿으면 바닥의 색을 바꾸었다. 바뀐 색은 곧 사라졌지만, 잠깐 동안은 분명히 있었다.


점심시간, 매점 앞 줄은 길었다. 어묵국물 냄새가 복도까지 퍼졌다. 종이컵을 들고 서 있는 아이의 손끝이 빨개져 있었다. 나는 그 옆을 지나며 그냥 지나쳤다. 대신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아 마셨다. 약간 비린맛이 났다. 친숙한 불완전함. 그런 맛은 수돗물에서만 난다. 뭔가가 덜 걸러졌다는 느낌은 때로 사람을 안심시킨다. 완벽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 나는 물을 다 마시고, 종이컵을 펼쳐 완전히 납작하게 만든 뒤 휴지통에 버렸다. 오늘도 한 장의 종이는 무사히 제 역할을 마쳤다. 그 무사함이 부러웠다.


훈련된 듯, 저녁이면 또 가게로 갔다. 스피커에선 늘 같은 음악이 흘렀다. 십여 곡이 채널을 바꾸듯 돌아가며 재생되었다. “또 이 노래네요” 하고 중얼거렸더니, 같이 일하던 형이 웃었다. “웃길지 모르지만, 나 이 곡 나오면 마감 체크 시작한다.” 음악의 길이로 시간을 재고, 가사 한 구절로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는 사람. 기계적 인간처럼 보여도, 사실은 누구보다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


가게를 정리할 때 즈음, 유리창 너머로 또 진눈깨비가 내렸다. 나는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마지막으로 카운터 위를 한 번 훑었다. 하루 동안 쌓인 부스러기들이 손바닥에 모였다. 휴지통에 털어 넣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내일도.”


그 말은 약속이었고, 주문이었고, 작은 기도였다.


문득 가게를 닫기 전 한 손님이 말한 게 생각났다.


“학생, 손이 좋네”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들었다. “손이 성실해 보여.”


손님은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말은 쉽게 흘러갔고, 나는 그 말을 오래 붙잡았다. 내 손이 성실해 보인다는 말. 손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어쩌면 그 말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손바닥을 오래 바라보다가 잠들었다. 손금 사이에 남은 물기, 작은 상처, 굳은살. 모든 게 나를 증명하는 문장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잠깐 멈춰 섰다. 흩날리는 것들과 흩어졌던 것들과 아직 흩어지지 않은 것들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손을 들어 올려 공기 중 몇 점을 받아냈다. 손금 사이로 작게 스며드는 차가움. 그 감각이 잠깐 동안 살아 있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폈다. 피가 손끝을 돌았다. 그때, 안쪽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잘 참았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며, 나는 내일의 모양을 아주 조금 그려볼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선으로, 지우개 가루가 묻은 종이 위에, 그래도 분명히 보이는 선. 진눈깨비가 내리던 밤처럼,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선.


그리고 나는 걸었다.

사라지는 동안만큼은 예쁜 것들을, 내 안에 하나씩 붙잡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