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 터미널은 낮처럼 환했다. 형광등은 겨울밤의 온기를 한 점도 허락하지 않는 색으로 바닥을 눌렀다. 바닥은 얇은 왁스층 아래로 유리처럼 반짝였고, 그 위를 캐리어 바퀴가 지직— 하고 긁으며 지나갔다. 잔기침, 종이컵이 자판기 투입구에 부딪히는 소리, “백무동, 마천행 버스 곧 출발합니다” 하는 안내 멘트가 천장의 철재 트러스 사이를 부유하다가 늦게서야 내 귀로 떨어졌다. 많은 소리가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처럼 조용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자 엉덩이로 차가운 결이 그대로 전해졌다. 의자는 누군가의 체온을 오래 잡아두지 않았다. 어깨에 맨 가방 끈이 얇게 쇄골을 눌렀다. 손을 비벼 온기를 내보려 했지만 손금 사이로 금세 식어 갔다. 손바닥을 무릎에 포개고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아주 얕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아, 밤길은 조심해야 한다. 운전자도, 옆에 타는 사람도”
“응, 아빠.”
대답은 입술을 떠나자마자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눈을 뜨자 앞에 앉은 남자가 종이봉투를 양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빵 냄새가 났다. 그 옆에서 연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작은 목도로 된 표를 양손으로 잡고 탁, 탁, 접었다 폈다. 어쩌다 마주친 시선이 부끄러워 나는 곧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외투와 목도리에서는 습기가 올라왔다. 누군가는 우산을 접으며 바닥에 물을 뿌렸고, 누군가는 손에 든 슈크림빵을 들여다보다가 작은 바람 소리와 함께 한 입 베어 물었다. 빵껍질이 부스러졌다.
출발 시간까지 20분이 남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터미널 가장자리로 걸었다. 식당가 끝, 오래된 커피 자판기 앞. “블랙 / 설탕 / 다방”이라는 낡은 버튼 아래 종이컵 집게가 덜컥거리며 컵을 하나 떨어뜨렸다. 얇고 뜨거운 물줄기가 종이컵 벽을 때리며 오르락내리락했다. 김이 올라왔다. 컵을 두 손으로 감싸니 종이의 미세한 결이 손금마다 스며들었다. 커피는 써서 혀뿌리에 오래 남았다. 쓴맛을 천천히 굴리다 삼키니 목으로 내려가는 길이 또렷해졌다.
전광판에 ‘백무동’ 노란 글씨가 깜박였다. 그 글자가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멀어지는 사이, 나는 뒤늦게 숨을 들이켰다. 몸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출발 안내 방송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각자의 짐을 끌고, 각자의 속도로, 같은 문을 향해 걸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목적지를 품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은 방향이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버스 계단의 금속판은 차갑게 젖어 있었다. 신발 밑창이 살짝 미끄러지며 ‘찍’ 하고 짧은소리를 냈다. 자리에 앉아 벨트 버클을 당기자 금속이 낮게 부딪혔다. 엔진이 깊고 둔하게 떨었다. 그 떨림이 천천히 허공을 진동시키더니, 몸속 뼈와 뼈사이로 스며들었다. 버스가 움직이자 창밖 불빛들이 길게 늘어져 뒤로 도망쳤다. 내가 떠난 건지, 세상이 떠난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습기가 낀 창에 이마를 가볍게 댔다. 미지근한 열이 이마에서 유리로 옮겨갔다. 숨을 내쉬자 얇은 김이 원을 그렸다. 검지로 ‘아’ 쓰고, ‘빠’ 쓰고, 손바닥으로 문질러 없애버렸다. 지우고 나니 유리에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기가 얇게 번졌다.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자리에, 내 호흡만이 다시 차분히 쌓였다.
버스는 도시의 마지막 신호를 오른쪽 거울로 밀어낸 뒤, 깜깜한 국도에 올라섰다. 가로등은 간헐적으로, 꼭 필요한 곳에만 서 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헤드라이트가 하얗게 쓸고 지나갔다. 눈발이 헤드라이트 빔을 가로지르며 미세한 비늘처럼 반짝였다가, 어둠 속으로 곧장 떨어져 사라졌다. 빛의 꼬리표에 매달린 수많은 작은 점들을 보는 동안, 마음은 이상하게 고요해졌다.
중간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다. 문이 열리며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한 번에 들이쳤다. 꼭꼭 싸맨 패딩 속에서 아기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아이를 업은 엄마가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자리에 앉자 아이의 손이 이불 밖으로 조금 미끄러져 나왔다. 콩알만 한 손톱이 조심스럽게 달려있는 손가락. 나는 그 작은 손끝이 이불을 탁— 하고 움켜쥐는 순간을 보았다. 그 움켜쥠이 어쩐지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아버지 무릎 위에서 잠들었던 밤들이 떠올랐다. 차창 밖으로 미끄러지는 불빛을 보다가, 갑자기 고개가 떨어지면 아버지의 손이 재빨리 내 이마를 받쳐주던 감각. 그 손의 거칠고도 따뜻한 표면. 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서 꼭 맞잡았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마주 닿을 때, 창밖 어둠이 조금 물러났다.
버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곡선을 돌 때마다 차체가 부드럽게 기울었다. 기울 때마다, 마음속의 어떤 서랍도 함께 열렸다 닫혔다. 유치원 때 만든 크레파스 그림,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아버지가 흔들던 작은 깃발, 손가락을 베었을 때 연고 냄새와 함께 들리던 “괜찮다, 조금만 참아”라는 말. 그 사소한 조각들이 연달아 올라왔다가, 고개를 숙이면 물속 조약돌처럼 다시 가라앉았다.
차 안에는 장거리의 냄새가 있었다. 패딩에 밴 세제 냄새와 라면 수프, 플라스틱 컵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물의 김, 그리고 엔진 기름의 묵직한 향. 그 냄새들 사이로 내 배낭 안 봉투의 종이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올라오는 듯했다. 합격 통지서. 종이의 감촉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또렷해졌다.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은 단어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합격’. 그 두 글자가 내 안쪽에서 작은 난로처럼 오래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창밖을 보거나, 고개를 떨군 채 잠들거나, 바닥 쪽으로 시선을 떨어뜨려 생각에 잠겼다. 앞 좌석 남자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 보다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화면을 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옆좌석 통로 쪽에 앉은 노인은 손가락 두 마디로 염주를 굴렸다. 딸깍, 딸깍, 소리가 작게 났다. 나는 그 작은 소리가 버스의 진동과 어딘가에서 딱 맞게 겹치는 순간을 몇 번이나 들었다.
새벽이 가까워지자 빛은 더 적어졌다. 하지만 완전한 어둠은 오지 않았다. 산등성이 너머로 아주 얕은 회색이 일렁였고, 낮게 깔린 안개가 들판 위를 느릿느릿 흘렀다. 우리는 아직 밤의 안쪽을 달리고 있었지만, 그 가장자리 어디쯤에서 서서히 아침이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창문 유리의 온도 변화가 먼저 알려주었다.
“곧, 터미널입니다.”
기사님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버스가 큰 원을 그리며 고속차로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길가의 간판들이 하나둘 읽히기 시작했다. ‘백무동산장’, ‘지리산 국립공원 백무동 탐방 안내센터 ’. 밤을 지새운 간판들이 저녁을 버티기 위해 마지막으로 빛을 짜낸 후 쉬고 있었고. 버스가 곧 멈췄다. 공기가 바뀌었다.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내가 알고 있던 겨울보다 한 단계 더 깊은 겨울이 얼굴을 정면으로 스쳤다. 폐까지 차갑게 가라앉는 공기. 그 공기 속에는 땅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얼어붙은 흙과 소금, 오래된 나무, 멀리 산에서 내려오는 송진의 기미. 도시에서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코 안쪽이 얼얼했다. 숨을 내쉬니, 하얀 김이 내 입에서 한동안 떠 있다 서서히 풀렸다.
터미널 앞 골목에서 빵집 아주머니가 셔터를 반쯤 올렸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찢었다. 먼 개 한 마리가 반쯤 하품을 하며 늘어진 소리로 두 번 짖었다. 멀리,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산자락에서 은은하게 종소리가 한 번 울렸다. 어제와 오늘을 가르는 얇은 선 위로, 내 발이 살짝 올라섰다 내려왔다.
길을 따라 걷는 동안, 가로등이 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림자는 내 앞에서 걷다가, 뒤에서 따라오다가, 다시 앞질러 가길 반복했다. 내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다. 바닥엔 얇게 얼음막이 생긴 물웅덩이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우회하며 발끝으로 얼음을 건드리자 ‘자작’ 하고 미세한 금이 퍼졌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상쾌했다. 세상에 금이 가는 소리, 그러나 당장 부서지지는 않는 소리.
할아버지 집 대문 앞 계단은 열두 개였다. 아버지가 늘 그렇게 세어주었다. “하나, 둘, 셋...” 열두. 세어 올라가며, 나는 마지막 두 칸에서 잠깐 멈췄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기척을 들었다. 아주 낮고 느린 숨소리. 외양간 쪽에서였다.
외양간 문을 밀자, 오래된 나무가 낮게 끼익— 하고 울었다. 짚단 위로 하얀 입김이 두 번, 세 번 올라왔다 사라졌다. 송아지 한 마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큰 밤알처럼 반짝였다. 귀 끝이 살짝 흔들렸다. 코등은 축축했고, 그 위로 매서운 겨울 냄새가 얇게 앉아 있었다. 나는 한 걸음 다가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송아지는 천천히 내 손등을 냄새 맡았다. 따뜻한 숨이 손등을 스쳤다. 그 온도가 ‘여기’라는 사실을 내 손바닥에 찍어 주었다.
짚의 마른 냄새, 오래된 목재의 수액 냄새, 축축한 흙냄새 사이로 희미한 소금기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할아버지가 늘 뿌려놓던 굵은소금일지도 몰랐다. “겨울엔 얼기 전에 미리 뿌려둬야지.” 하며 웃던 목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그 웃음소리 위로, 아버지가 했던 말이 겹쳐졌다. “그 송아지는 눈으로 만들어서 봄이 되니까 녹았어.” 나는 문득 웃음이 났다. 그 말을 믿던 어린 나를 떠올리며, 그리고 그 말을 굳이 꾸몄을 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리며.
외양간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귀에는 송아지의 씹는 소리가 ‘사각, 사각’ 하고 느리게 박자를 쳤다. 멀리서 바람이 도랑을 타고 오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나는 배낭에서 봉투를 꺼내 펼쳐 보았다. 종이의 결이 새벽 공기 속에서 선명했다. 할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은 문장. ‘귀하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나는 그 문장을 입술로 무음으로 따라 읽었다. 말이 공기 중으로 풀려나갔다.
외양간 문을 닫고 나오니, 하늘이 아주 조금 밝아져 있었다. 산등성이 위가 연한 우윳빛으로 번져가는 중이었다. 나는 계단에 앉아 신발끈을 한 번 더 조였다. 발목을 돌려 혈이 도는 느낌을 확인했다. 그 작은 준비 동작만으로도, 마음이 길의 한가운데로 바르게 서는 기분이 들었다.
밤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나는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린다고 생각했다. 어둠은 깊었고, 길은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문과 열두 개의 계단, 외양간의 온기, 점점 밝아지는 하늘을 보니 알겠다. 길에는 언제나 끝이 있고, 그 끝은 새로운 길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속삭였다.
“아빠, 나 왔어요. 그리고 이젠 괜찮아요. 혼자서도 잘 해낼게요.”
말이 끝나자 바람이 한 번 스쳤다. 짚단이 살짝 흔들렸다. 그렇게 새벽이, 아주 얇은 빛으로 우리 집 마당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