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밀자 종이 얇게 울리고, 온도가 한 계절 바뀌었다. 바깥은 얼음장 같은 겨울밤, 안은 형광등의 하얀 기온으로 데워진 작은 섬. 유리문 가장자리에 얇게 맺힌 성에가 내 입김에 맞고 한 번에 사라졌다. 카운터에 출근 체크를 하고, 검은 앞치마의 매듭을 허리 뒤에서 두 번 묶었다.
천의 올이 손등을 스치며 ‘사각’ 하고 속삭였다. 가게 안은 조용했지만 살아 있었다. 냉장고 뒷면의 압축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쏴—’하고 숨을 쉬고, 커피머신의 예열등이 아주 미세하게 깜빡이고, 라디오 디제이는 지역 행사 소식을 밋밋한 톤으로 읽고 있었다.
나는 먼저 유통기한을 체크했다. 삼각김밥 라벨의 날짜—‘02/09’—를 엄지로 눌러 확인하고, 기한이 지난 것들은 다른 바구니에 옮겼다. 젖은 손가락에 비닐이 붙었다 떨어졌다. 진열대 아래 서늘한 바람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맥주 진열대의 페트병을 라벨이 바깥을 보도록 돌려 세우고, 칫솔과 치약 코너에 비어 있는 한 칸을 채웠다.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나는 묘하게 안심했다. 세상이 전부 어긋나더라도, 적어도 이 좁은 사각형들만큼은 내가 정렬할 수 있다는 느낌—그게 밤근무의 작은 행복이었다.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두툼한 패딩에 모자를 눌러쓴 택배 기사였다. 그는 말없이 커피머신 앞에 서서 종이컵을 하나 눌렀다. 커피가 떨어지는 동안, 그의 어깨에서 희미한 김이 피어올랐다. 그 순간 나는, 추위가 사람을 어떻게 기계처럼 만들다가도 따뜻한 액체 한 모금으로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는지 이해했다.
“고생 많으세요.”
내가 말하자 그는 웃으며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종이컵 뚜껑이 닫히는 소리—‘딱’—이 작은 인사처럼 들렸다.
저녁 열 시를 넘기자 사람의 흐름이 살아났다. 맞은편 사무실에서 회식이 끝났는지, 구두 굽 소리가 탁탁 울리며 남자 셋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한 명은 삼각김밥을, 다른 한 명은 컵라면과 김치를, 마지막 한 명은 계산대 옆 진열대의 숙취해소 음료를 두 병 집어 들었다.
“이거 카드 두 번 나눠서 해 주세요.”
말끝에는 피곤이, 눈동자 주변에는 술기운이 작게 맴돌았다. 바코드 리더가 ‘삑, 삑’ 소리를 내며 가격을 읽는 동안, 라디오는 옛 발라드를 틀어주었다. 카운터 유리 밑에 깔린 복권 홍보 전단의 네온 글자가
형광등을 받아 미세하게 흔들렸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내 말이 문을 따라 나가며 얼었다. 10시 반, 잠깐의 고요.
나는 라면 코너에서 육개장 사발면을 하나 꺼내, 자판기 옆 벤치에 앉았다. 컵에 뜨거운 물을 붓자 뿌연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얼어 있던 눈가를 잠깐 덥혔다. 젓가락으로 면을 한 번 들어올렸다가 놓는 사이,
편의점 외벽의 네온사인이 순서대로 켜졌다 꺼졌다.
빨강, 초록, 주황—그리고 다시 흰색. 빛이 젖은 길 위에 길게 늘어져 파문을 만들었다. 진눈깨비가 왔다.
유리문 밖 가로등 아래,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들이 느리게 빙글빙글 떨어졌다. 손바닥을 문밖으로 내밀어 한 조각을 받아 보았다. 닿자마자 사라지는 감촉.
사라지는 동안만큼은 분명히 내 손에 있었던. 작년 이맘때, 아버지의 겨울.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코끝을 찢던 쇠 냄새, 장례식장 냉방기의 마른 공기. 모든 것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날의 눈과 오늘의 눈발이 겹쳐 보였다. 컵라면을 내려놓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저, 붙었어요.”
견디듯 뱉은 말이 김 사이로 섞여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지는 동안만큼은 분명히 내 것이었다.
지—익 소리를 내며 유리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왔다. 검은 장갑을 벗으며 웃었다.
“혹시 여기에 따뜻한 물 좀 받아가도 될까요?”
텀블러를 내밀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머신에서 뜨거운 물을 반쯤 채워 드렸다.
그녀는 유자차 스틱을 계산해서 텀블러에 붓고, 뚜껑을 닫았다.
“밤마다 여기 불빛이 든든해요.”
그 말이 이상하게 내 어깨를 가볍게 했다. 불빛을 튼 건 사장님이지만, 밤마다 그 불빛을 지키는 건 내 일이니까. 열 한시가 넘어가는 무렵, 학원이 끝나 학생들이 떼로 몰려왔다. 젊은 목소리, 웃음의 높낮이, 과자의 비닐이 찢어지는 소리. 한 학생이 카운터에 다가와 물었다.
“형, 이거 원플러스원 맞죠?”
“네, 같은 거 하나 더 가지고 오면 됩니다.”
그가 뛰어가고, 과자 두 봉지가 카운터 위에 나란히 내려앉았다. 나는 중력처럼 자연스러운 젊음을 보았다.
좋았다. 나도 저 길로 가고 싶었다. 손님들이 빠져나가자 매장 안에 비로소 ‘밤’이 들어왔다. 전기히터가 미약하게 돌아가는 소리와 냉장고 문 고무패킹이 아주 천천히 숨 쉬는 소리, 멀리, 골목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
나는 바닥을 한 번 더 밀었다. 대걸레가 진열대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전날 묻어 있던 신발자국들이 조금씩 지워졌다. 지워지는 동안만큼은 분명히 여기에 있었던. 마음속에서 문장 하나가 끝을 맺었다.
“대학교 붙었다며? 축하해요.”
사장님이 언제 들어왔는지, 카운터 뒤에서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진상 손님 오면 커피 한 잔씩은 마음껏 마셔요. 오늘은 내가 먼저 살게요.”
그녀가 종이컵에 커피를 내려 내 앞으로 밀었다. 잔에서 나는 온기가 집을 찾은 사람처럼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새벽 두 시. 거리는 한산했다.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가게 바닥에 빛의 칼을 그었다가 사라졌다. 나는 계산대에서 고개를 들어 유리창 너머를 오래 바라보았다. 가로등 아래에서 진눈깨비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흩날렸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더 이상 그 불안정함을 미워하지 않았다.
눈과 비의 사이에도 길이 있다는 걸, 서툴지만 그 사이를 걸어갈 수 있다는 걸 오늘은 조금 알 것 같았다.
난방 온도를 한 칸 낮추고, 매출 마감표를 출력했다. 프린터가 ‘지지직’ 소리를 내며 백지를 내어놓을 때,
라디오에서 DJ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벽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 하루 잘 버텼다고, 참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나는 웃음이 났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따라 말했다.
“고맙습니다.”
작년 겨울,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겨울밤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가슴 어느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온기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컵라면 국물처럼, 커피처럼, 사라지는 동안만큼은 분명히 내 것이었다가, 몸속으로 들어와 오래 머무는 온기.
문이 한 번 더 ‘딩—동’ 울리고 닫혔다. 나는 다시 진열대 사이로 들어갔다. 라벨을 맞추고, 비어 있는 칸을 채우고, 떨어진 휴지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작은 섬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오전 여덟 시,
교대가 들어오면 인수인계를 하고,
나는 가게 밖으로 나갈 것이다.
유리문이 닫히는 순간,
내 뒤에서 불빛이 한 번 흔들리겠지.
그 빛을 뒤로 남기고도 나는 이제 안다. 내 안에도 비슷한 모양의 빛이 있다는 것을.
오늘 밤, 편의점의 형광등 아래에서— 나는 내 겨울을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